“주말까지 콘텐츠 제작, 최저임금도 못 받아”
유튜브채널 노동자 청구소송 2년 5개월 만 ‘승소’
겉으로 화려해 보이는 유튜브 채널 방송 뒤에 가려진 노동자들이 있었다. 방송 콘텐츠를 만드는 숨은 주역인 스태프들이다. 근무시간과 장소 등이 정해져 있는 일반 회사와 달리 자율적인 환경에서 일하는 이들은 법으로 규정된 ‘노동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증언한다. 게임 관련 콘텐츠로 인기를 끈 유튜브 채널 ‘자빱TV’에서 8개월간 일한 A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A씨는 13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나와 “열렬한 시청자로서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스태프로 일했는데, 현실은 턱없이 짧은 제작기간과 소수 인원으로 고퀄리티의 콘텐츠를 만들어야 했다”며 “잠을 줄이고 주말까지 제작에 매달리면서 육체적·정신적으로 약해져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그만뒀다”고 증언했다. 그는 이런 피해는 자신만 겪은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A씨를 포함한 해당 채널의 스태프 15명은 2022년 6월 법원에 채널운영자 이모씨를 상대로 임금지급 청구 소송을 냈다. 이들은 콘텐츠 기획, 서버·시스템 구축, 음향·영상 작업, 촬영 등 업무를 수행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부분 근로계약서는 쓰지 않고 일했다고 한다. 이씨가 ‘근로계약서는 안써도 되지 않느냐’는 취지로 말했고, 이들도 다른 일을 함께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이후 주말까지 일하고 법정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으면서도 제대로 따질 수 없었다고 했다.
1심 선고는 이들이 소송을 낸 지 2년5개월만에 나왔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재판장 정회일)는 “이씨가 스태프 15명에게 1인당 600만~3300만원 상당의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원고 전부 승소 판결했다. 유튜브 채널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판부는 유튜브 채널에서의 노동자성 인정을 구체적으로 따졌다. 스태프들이 일하는 근로시간 산정 판단이 대표적이다. 자빱TV 채널 스태프는 모두 재택근무가 가능했고 온라인 단체대화방에서 업무 관련 내용을 주고 받았다. 재판부는 이 대화방의 접속시간을 최소한의 근로시간으로 산정할 수 있다고 봤다. 이씨는 “대화방에서 사적인 대화를 했고 휴식도 취했으므로 근로시간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지휘·감독하에서 이뤄진 휴식시간은 근로시간으로 인정돼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했다.
재판부는 유튜브에서도 ‘사용자의 실질적인 지휘·감독’이 노동자성 지위 인정에 주요한 원칙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씨가 스태프들에게 콘텐츠 진행에 관해 큰 틀을 정해주고, 제작 방향을 결정하는 등 업무 지시를 내렸고 이는 사용자로서 실질적인 지휘·감독을 한 것으로 본 것이다.
이 사건을 대리한 김예지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이번 판결의 의의는 근로자성 판단에서 근로의 실질을 봐야한다는 ‘사실 우선의 원칙’에 충실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이 앞으로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 노동자들의 근로자 지위 인정 소송에도 확대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들을 대리한 이종훈 변호사(법무법인 시민)는 “온라인 기술 발달에 따라 근로자성 소송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유튜브 채널 노동자의 근로자성을 인정한 이번 판결 선례가 영향을 끼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