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날이 밝았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줄여 흔히 수능이라 부르는 이날, 수험생과 그 가족들은 물론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긴장 아닌 긴장을 한다. 얼마나 중요한 날이면, 여타 학생들의 등교시간과 직장인들의 출근시간이 한 시간 늦춰지고, 비행기는 ‘영어 듣기 평가 시간’에 뜨고 내리지도 못한다. 이외에도 수능날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은, 생략한다. 전 세계에 또 이런 나라가 있을까 싶지만, 그 비슷한 또래의 아비이다 보니,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 수험생들의 얼굴이 안쓰러울 뿐이다.
<관촌수필>로 유명한 이문구의 단편 ‘장평리 찔레나무’의 주인공 김학자는 장평리 부녀회장이자 기본바로세우기운동 장평분회장이다. 이금돈에게 시집와서 엽렵한 솜씨로 살림살이했고, 하나밖에 없는 시동생을 건사하며 남부럽지 않게 장가도 보냈다. 시내에서 당구장을 해보겠다고 들들 볶아대기에 적잖은 돈도 대주었다. 시동생 이은돈은 그걸 반년 만에 남의 손에 넘기고 서울 가서 점방을 차려 앞가림 정도는 하고 산다. 상황이 이럴진대, 형수를 ‘금이야 옥이야’까지는 못해도 나름 대우했어야 하는데, 아들 셋을 낳고는 딸만 둘인 형네 알기를 ‘개 항문에 붙은 보리쌀 정도’로 생각했다. 결정적인 사건은 김 회장의 큰딸 월미가 변변치 못한 수능 점수를 받아왔을 때 생겼다.
이은돈의 전화 첫마디는 이랬다. “형수 대관절 걔 점수가 얼마나 나왔간디 그러셔? 하여간 두 자릿수는 넘었을 거 아뇨? 아 걔 형편에 그만했으면 됐지 뭘 더 바래셨다.” 김학자가 복장이 터진 건, 조카 걱정하는 양 위세 떠는 이은돈의 마지막 말이다. “형수, 내가, 이 인간 이은된(李銀敦)이가 암만 반갑잖은 사람이라구 해두 그렇지, 하여간 우리가 냄은 아니잖요. 안 그료?” 전화를 끊은 김학자는 얼마나 화가 났으면 이렇게 중얼거린다. “냄이사 아니지, 냄은 아녀. (…) 그러믄 뭐여, 냄만도 못헌 늠이지, 냄두 아니메 냄만두 못한 놈이 뭐간, 뭐는 뭐여, 웬수지. 그게 바루 웬순겨. 뭣이 워쩌구 저쪄?”
지난 10월 개봉한 영화 <보통의 가족>은 온통 한국 사회의 위선으로 가득하다. 이름 있는 번역가이자 사회공헌단체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연경(김희애)은 조카에게 ‘가짜’ 봉사활동 증명서를 건네며 이렇게 말한다. “미리 주는 거야. 나중에 대학 가서 꼭 봉사해야 해.” 하지만 조카에게 그 증명서는 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요식 행위일 뿐, 오히려 숙모의 봉사활동을 (속으로) 비웃는다. 이런 장면도 있다. 어느 날, 아들이 좋은 대학 가기 어렵다는 교사의 말에 남편 재규(장동건)에게 전화를 건다. 대학병원 소아과 교수인 재규에게 그런 일은 하려 하지 않을 뿐,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연경은 잘 안다. 영화는 더 충격적인 사건들로 이어지지만, 각설한다. 각각의 인물들이 ‘보통의’ 인물 범주를 넘어서지만, 한국의 부모들에게 대학 입시는 범법이나 불법도 개의치 않을 만큼 중차대한 일임을, 영화는 극단의 형태로 보여준다.
수능이 무엇이건대, 우리 사회는 ‘장평리 찔레나무’의 형수와 시동생처럼 남도 아닌 사람들이 남보다 못한 원수가 되어야 할까. 대체 대학은 무엇을 하는 곳이기에 선량한 학부모들이, <보통의 가족>의 몇몇 등장인물들처럼, 범법과 불법을 개의치 않게 만드는 것일까. 소설과 영화에만 등장하는 이야기라면 차라리 한바탕 웃고 말겠지만, 현실은 그보다 더한 복마전(伏魔殿)이니 가쁜 숨을 몰아 쉴 따름이다. 현실은 비록 남루하더라도, 모쪼록 수능 끝나고 며칠만이라도 모든 수험생들이 활짝 웃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