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명상살인’
‘오마주’는 주말에 볼 만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찾아옵니다.
독일의 변호사 비외른 디멜에겐 사랑스러운 딸과 아내가 있습니다. 잘 맞는 정장과 로펌에서 지급한 고급 차량도 그를 돋보이게 합니다. 일 처리 능력도 뛰어나 의뢰인의 신뢰를 받고 있습니다.
겉보기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지만, 디멜은 사실 극심한 스트레스에 빠져 있습니다. 그의 주요 의뢰인이 무시무시한 범죄조직이라는 점 때문이죠. 한 마디로 디멜은 ‘마피아의 변호사’입니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잃어가는 그에게 아내는 ‘명상 수업’을 받아보라고 추천합니다. 탐탁지 않아 하던 디멜은 속는 셈 치고 명상 수업을 받은 뒤 인생의 전기를 마련합니다.
넷플릭스 8부작 시리즈 <명상살인>은 ‘독일인은 재미없다’는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작품입니다. 잔혹한 살인 장면, 시신 훼손 장면이 수시로 나오는데, 어처구니없는 주인공의 대처에 비실비실 웃음이 나옵니다. 독일 출신 변호사이자 작가인 카르스텐 두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합니다.
디멜은 명상 선생으로부터 삶을 다스릴 방법을 전수받습니다. “다른 일로부터 방해받지 않는 자신만의 ‘시간의 섬’을 만들어라” “일이 너무 버거워지면 믿을만한 누군가에게 위임하라” “초조해지면 멈춘 뒤 심호흡하라” 같은 조언들이죠. 어찌 보면 평범하고, 어찌 보면 유용한 조언입니다.
디멜이 변호하는 조직의 보스 드라간이 라이벌 조직원을 무참하게 살해하면서 일이 커집니다. 하필 인근에 주차 중이던 스쿨버스 속 학생들이 이 모습을 촬영했습니다. 드라간은 버스에 뛰어들어 학생들을 위협하기까지 했습니다. 도무지 변호할 길이 없는 이 사건을 두고 드라간은 디멜을 닦달합니다. 사랑하는 딸과 별장에 가서 주말을 보낼 생각을 하던 디멜은 일단 드라간을 경찰로부터 숨기기 위해 차 트렁크에 태운 채 별장으로 향합니다. 그리고는 드라간을 트렁크에서 내려주지 않고 딸과 함께 주말을 보냅니다. 트렁크 안의 온도는 사람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올라갔겠죠. 명상 선생의 조언대로 디멜은 ‘시간의 섬’을 만든 것입니다. 현재 하는 일에 집중하고, 다른 일은 생각하지 않기. 즉 딸과 즐겁게 지내는 데만 집중하고, 트렁크 속의 보스는 그대로 죽게 내버려 두기. 디멜은 이런 식으로 극복할 수 없는 듯 보이던 시련을 헤쳐나갑니다.
디멜은 드라간이 살아있는 것처럼 꾸미고, 경찰의 추적을 피하고, 보스의 행방을 궁금해하는 조직원을 속입니다. 지난한 역경이 디멜을 기다리지만, 명상 수업의 가르침을 활용하는 디멜의 표정은 더없이 평화롭습니다.
한국에서는 불교 조계종을 중심으로 명상을 널리 보급하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명상살인> 속 명상에는 종교적 색채가 전혀 없습니다. 몸이 뻐근하면 스트레칭을 하듯, 초조와 불안에 쫓기는 현대인들의 생존 방법론으로 명상을 권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생각해보니 서구 기술문명의 상징 중 하나인 제 애플워치에서도 가끔 ‘마음 챙기기’ 앱이 작동해 1분간의 심호흡이나 성찰을 권하더군요. 만다라 문양으로 커졌다 작아지는 액정 화면을 보며 지시를 따라한 적이 있는데 1분이 참 길다고 느꼈습니다.
그래도 1분이라도 잠시 멈춰 자신을 돌아보는 건 <소년이 온다> 10분 요약본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현대인에게 유용한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나는 누구이며,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는지 알아차리는 것은 마피아 보스의 시체를 처리해야 하는 변호사가 아니라 누구에게도 필요한 일일 겁니다. <명상살인>은 회당 30분가량의 분량으로 시청에 부담이 없습니다. 원작 소설의 독백은 디멜이 카메라를 보고 직접 말하는 방식으로 처리했습니다.
‘마음챙김’ 지수 ★★★★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현재에 집중하세요
‘독일식 유머’ 지수 ★★★ 독일인 중 가장 웃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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