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반포대교 남단 45번 교각 위 좁은 철재 난간에 지난 16일 20대 남성 A씨가 서초서 반포지구대 협상요원과 손을 잡고 있다. A씨는 교각 위에서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며 스스로의 처지를 비관하고 있었다. 서초경찰서 제공
지난 16일 오후 8시 50분쯤 경찰에 신고가 접수됐다. “친구가 술을 엄청나게 마시고 혼자 한강으로 간 것 같다”는 내용의 자살 의심 신고였다. 경찰은 20대 남성 A씨의 휴대전화 위치를 추적했다. 반포대교 남단 인근을 수색하던 중 다리 위 시멘트 구조물과 비슷한 색의 옷을 입은 A씨가 발견됐다. 그는 철제 난간에 위태롭게 서있다가 앉기를 반복했다.
서울 서초경찰서 반포지구대 소속 위기협상 요원이 난간으로 향했다. 다리 아래에선 소방관들이 에어매트를 펴고 있었다. 자신을 위기협상 요원으로 소개한 경찰관이 건넨 첫 마디는 “여기까지 올라오느라 얼마나 힘들었어요, 어려운 일이 있으면 우리 같이 이야기하고 고민해 봐요”였다. 경찰은 A씨에게 “손을 살짝 잡겠다”고 이야기하고, 토닥이기 시작했다. “괜찮아요, 선생님 상황이 이해가 가요”라는 말도 덧붙였다. 요원들은 신고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오후 9시30분, A씨와 함께 반포대교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경찰은 현장에 출동한 위기협상 요원들의 ‘말’이 목숨을 구했다고 봤다. 서초서는 지난 9월부터 전국 최초로 지역 경찰 위기협상 요원들을 배치했다. 서초서는 본서가 아닌 지구대·파출소 등에서 근무하는 지역 경찰 소속 28개 순찰팀에 남녀 1명씩 총 56명을 선발해 ‘자살 기도 위기협상 전문교육’을 이수하게 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에 도착한 경찰이 ‘빨리 내려오라’는 식으로만 대화한다면 요구조자의 반감이 커진다”며 “대화 기법을 연구해 전파한 게 유의미했다”고 말했다.
서초서가 이런 제도를 운용하게 된 계기가 되는 사건이 있었다. 지난 4월 서초동의 한 아파트 15층에서 자살 위험이 있는 대학생이 있었는데, 현장에 도착한 이후 50분여 동안 에어매트 설치를 기다리던 경찰은 대화를 시도하지 않았다. 에어매트에 공기가 3분의 1쯤 찼을 때, 구조 대상자(요구조자)는 추락했다. 이후 서초서는 강력팀 등에 자살 출동 시 위기 협상을 담당하는 요원들을 두기 시작했다.
지난 8월에는 서초구 우면동의 한 아파트 15층 에어컨 실외기에 한 여성 구조 대상자가 있었다. 현장 지구대가 먼저 출동한 상태에서, 서초서 위기협상 요원이 도착했으나 도착 직후 구조 대상자가 자살했다. 이에 서초서는 지난 9월부터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하는 지구대, 파출소 등에 ‘협상 요원’을 두기로 했다. 서초서 지역 경찰의 현장 도착까지는 평균 3분 안팎이 걸린다. 경찰 관계자는 “서초서에서만 한 해 자살이 1000건이 넘는다”며 “마음을 다쳐 죽고 싶은 사람들부터 살려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