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4월25일 포르투갈 군인들은 무혈 쿠데타를 일으켜 독재를 무너뜨렸다. 군이 주도한 혁명이지만 총성은 들리지 않았다. 대신 이들의 총에는 모두 카네이션이 꽂혀 있었다. 이처럼 독특한 포르투갈 민주화의 역사적인 장면은 한 여성의 사소한 행동에서 만들어졌다.
1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과 로이터통신은 포르투갈 카네이션 혁명의 상징인 셀레스트 카에이루가 91세 나이로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1933년 리스본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카에이루는 만 한 살이 되던 무렵 아버지를 여의고 보육원에서 자랐다. 성인이 된 후에는 홀로 딸을 키우며 여러 일자리를 전전했다.
포르투갈 혁명이 일어나던 해 40세였던 카에이루는 한 식당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4월25일은 카에이루가 일하던 식당이 개업한 지 1년이 되는 날이었다. 탁자마다 카네이션을 올려두고 영업 준비를 하던 식당 사장은 쿠데타를 알리는 라디오 방송이 나오자 직원들을 모두 집으로 돌려보냈다. 준비했던 꽃은 직원들에게 선물로 줬다.
꽃을 들고 귀가하던 카에이루는 거리에서 혁명군을 마주쳤다. 한 군인이 담배 한 대를 빌려달라고 부탁했지만 카이에루는 비흡연자였다. 대신 그의 총구에 카네이션을 꽂아 주었다. 이후 혁명군은 시민들에게 총구를 겨누지 않는 ‘무혈 혁명’을 하겠다는 의미로 꽃을 꽂기 시작했고, 시민들도 군인들에게 카네이션을 건넸다.
당시 포르투갈에선 50년 가까이 집권한 독재 정권을 향한 시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해 있었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대부분 식민지가 독립을 선언했지만, 포르투갈 독재정권은 식민주의 전쟁을 고집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과 경제난에 지친 젊은 장교들은 혁명을 일으켰다. 24시간 안에 혁명군이 시내 주요 거점을 장악했고, 친정부군도 하나둘씩 입장을 바꿔 민주화를 지지했다. 독재 정권이 막을 내리면서 식민지도 독립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 측 경찰 발포로 네 명의 사망자가 나오긴 했지만, 혁명군에 의한 사상자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총구에 카네이션을 꽂은 혁명군의 모습이 주목을 받으면서 ‘카네이션 혁명’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혁명 후에는 누가 군인들의 총구에 카네이션을 꽂기 시작했는지에 관심이 쏠렸다. 여러 언론사가 취재에 나서면서 카에이루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졌다. 포르투갈에서 카에이루는 “카네이션 여인”으로 불리며 평화 혁명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지난 4월25일 열린 혁명 50주년 기념식에도 초청된 카에이루는 붉은 카네이션을 들고 나타났다. 지난 5월 리스본 시의회는 카에이루에게 명예 훈장을 수여하기로 했다.
포르투갈군은 성명을 통해 “카에이루는 사소한 몸짓 하나로 포르투갈을 영원히 바꿔놓은 혁명의 상징”이라며 “작은 행동에서부터 위대한 변화가 시작된다는 걸 일깨워줬다”고 애도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