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이들 기억하고, 남은 이들 잘살도록”…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맞아 열린 전시회

이예슬 기자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하루 앞둔 19일 서울 충무로 공간채비에서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가 주최한 ‘2024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안녕을 기억하기, 기억으로 살아가기’ 전시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전시장 한편에 마련된 세상을 떠난 ‘트랜스젠더와 성별다양성이 있는 사람’을 위한 추모 공간.  이준헌 기자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하루 앞둔 19일 서울 충무로 공간채비에서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가 주최한 ‘2024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안녕을 기억하기, 기억으로 살아가기’ 전시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전시장 한편에 마련된 세상을 떠난 ‘트랜스젠더와 성별다양성이 있는 사람’을 위한 추모 공간. 이준헌 기자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맞아 세상을 떠난 트랜스젠더를 애도하고 세상에 남은 이들을 위로하는 전시가 열렸다.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은 1998년 11월20일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트랜스젠더 혐오 범죄로 살해당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리타 헤스터를 추모한 데에서 유래했다.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는 19일 서울 중구의 ‘공간채비’에서 트랜스젠더 추모 도서전 ‘안녕을 기억하기, 기억으로 살아가기’를 열었다. 전시회장 곳곳은 트랜스젠더를 상징하는 분홍색과 하늘색의 종이꽃·깃발로 장식돼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검은색 빈 액자와 꽃이 방문객들을 맞이했다. 리나 조각보 활동가는 “이 액자에는 과거의 나 자신의 얼굴이 들어갈 수도, 세상을 떠난 우리의 동지들의 얼굴이 들어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성 정체성을 깨닫기 이전의 자신, 그리고 먼저 세상을 떠난 다른 트랜스젠더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의미를 담았다는 것이다.

전시회장 벽면 한쪽에는 ‘11월의 일상’을 주제로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이 보내온 사진과 글이 전시됐다. 처음으로 호르몬 주사를 맞은 날을 기념해 찍은 사진, 성전환 수술 날을 기다리던 일상의 사진, 트렌스젠더 성폭력 피해 생존자 자조 모임에 참여했을 당시 사진 등이 전시됐다. 성전환 수술 날짜를 예약했던 날의 사진을 보내온 한 트랜스젠더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일이긴 하지만 동시에 두렵기도 하다”라고 적었다.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하루 앞둔 19일 서울 충무로 공간채비에서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가 주최한 ‘2024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안녕을 기억하기, 기억으로 살아가기’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준헌 기자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하루 앞둔 19일 서울 충무로 공간채비에서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가 주최한 ‘2024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안녕을 기억하기, 기억으로 살아가기’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준헌 기자

리나 활동가는 “추모의 날이 슬프기만 한 날이 아니라 위로와 희망을 함께 나누고 내일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 날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전시를 준비했다”라고 했다. 이번 추모 전시와 함께 진행된 도서전에도 이러한 의미를 담았다. 도서전에는 성소수자 관련 책뿐 아니라 롤란트 슐츠의 <죽음의 에티켓>, 호프 에덜만의 <슬픔 이후의 슬픔> 등 장례·애도와 관련된 책들이 소개됐다. 소중한 이를 떠나보내고 세상에 남겨진 이들의 고민과 회복을 담은 책이다.

전시장을 찾은 이들도 애도에 그치지 않고 희망을 말했다. 트랜스젠더 여성이자 에세이 작가인 문주현씨는 “사진전이 너무 슬펐다”라면서도 “아직은 트랜스젠더 얘기를 다루기는 쉽지 않은 세상이지만 관련 책도 늘어나고 세상이 나아질 거라고 믿는다”고 했다. 트랜스젠더 여성 A씨도 “다양성을 존중하는 이들의 세상이 혐오하는 이들의 세상보다 훨씬 밝고 자유로운 세상이 될 것”이라며 “더 많은 이들과 함께하는 미래를 그리고 싶다”고 했다.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하루 앞둔 19일 서울 충무로 공간채비에서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가 주최한 ‘2024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안녕을 기억하기, 기억으로 살아가기’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준헌 기자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하루 앞둔 19일 서울 충무로 공간채비에서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가 주최한 ‘2024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안녕을 기억하기, 기억으로 살아가기’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준헌 기자

지난 16일에는 성소수자 단체 트랜스해방전선 등도 이태원에서 2024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성명문에서 “우리의 삶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투쟁의 역사를 지나왔고 그 시간 동안에 많은 동료를 떠나보내며, 바뀌어야 할 것은 우리의 삶이 아니라 우리 사회라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했다”라며 차별금지법·성별인정법 등을 제정하라고 요구했다.

조각보는 20일 오후 7시30분 공간채비에서 <나는 자살 생존자입니다>의 황웃는돌 작가와 애도·생존·안녕을 주제로 북토크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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