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폐지하기로 했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18일 법원 내부망에 올린 글에서 “2019년부터 소속 법관 천거·투표를 통해 법원장 후보를 추천하는 추천제가 시행됐지만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대내외적으로 여러 부작용이 지적됐다”며 “법원 안팎의 다양한 의견을 토대로 새 법원장 보임 절차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법원장 추천제는 지방법원 판사들이 투표로 소속 법원장 후보를 1~3명 추천하는 제도인데, 앞으로는 전국의 사법부 구성원이 추천하면 법관인사위원회가 최종 후보군을 추려 대법원장에게 건의하는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천 처장은 “내년 인사 때 법원 특성과 후보군을 면밀히 살펴 일부 지방법원(장)은 고법 부장판사가 임명될 수 있는 길을 열 예정”이라고도 했다.
법원장 추천제는 사법행정 민주화의 일환으로 2019년 도입됐다. 그 전엔 대법원장이 근무평정 결과를 토대로 법원장을 임명했다. 고법 부장판사를 거쳐 지방법원장을 하는 게 엘리트 판사 코스였다. 일선 법관은 고법 부장판사·법원장 인사권을 가진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 입김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 그 병폐가 곪아터진 게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이었다. 그 후 도입된 게 법원장 추천제요, 고법 판사는 고법에서만 근무하게 하는 고법·지법 인사 이원화다.
법원 일각에선 이 제도가 재판 지연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법원장은 법관들 눈치보느라 신속한 재판을 독려하지 못하고, 일선 법관들은 고법 부장 승진이라는 유인이 없어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법원이 법원장 추천제를 없애기로 한 이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결정은 지나치게 단선적이고 자의적인 접근이다. 재판 지연은 법관 부족, 법조일원화, 구술심리주의·공판중심주의 강화 등이 맞물린 복합적 문제다. 대법원 산하 사법정책연구원은 지난 5월 보고서에서 “불확실한 추측에 근거해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을 추천제로 돌리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올 초 취임 후 첫 정기인사에서 법원행정처를 확대개편했다. 대법원장 인사권 강화, 법원행정처 확대 모두 사법행정 민주화에 역행하는 것이다. 대법원은 법원장 추천제를 정 없애려거든 사법 관료화를 막기 위한 대안도 함께 내놓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사법농단 이전으로 돌아가려 한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