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채모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수사 중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대통령실과 경찰 관계자에 대한 조사 재개 방침을 밝혔다. 공수처 관계자는 19일 정례 브리핑에서 대통령실·경북경찰청 관계자들에 관해 “조사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 조사 가능성’을 묻는 질의엔 “성역 없이 누구든지 조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수처의 존재 이유를 보여주는 지당한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늑장 인사 등으로 위기를 겪은 공수처가 전열을 갖추고, 수사의 맥도 다시 잡은 것으로 보인다.
경북 예천군 내성천 수해 현장에서 실종자 수색 작업을 벌이던 젊은 해병대원이 급류에 휩쓸려 숨진 지 1년4개월이 지났다. 스무 살 청년이 피어보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했지만 지금껏 책임지거나 처벌받은 사람이 없다. 물살이 빠르고 흙탕물로 앞이 보이지 않는 곳에 왜 해병대원들이 구명조끼도 입지 않고 들어가야 했는지도 여전히 의문이다. 그러나 정권의 방해와 인력 부족 등으로 공수처 수사는 지금껏 지지부진했다. 윤 대통령은 공수처장 임명을 늦추고, 수사를 이끌어온 공수처 검사 4명의 연임도 임기를 이틀 남긴 시점에 재가하는 꼼수를 썼다.
시간이 흐르면서 채 상병의 죽음은 은폐 및 수사외압 사건으로 비화해 결국 정권의 아킬레스건이 됐다. 윤 대통령의 격노설은 사실로 드러났고, 박정훈 대령이 이끄는 해병대 수사단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외압이 가해졌다.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가 임성근 당시 해병대 사단장을 살리기 위해 ‘VIP’에게 로비를 하겠다는 녹취록까지 나왔다. 이 전 대표는 김건희 여사가 연루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공범이다.
공수처는 대통령실과 국방부 관계자들에 대한 가차 없는 수사로 사건의 진상을 낱낱이 규명하기 바란다. 초동수사기록을 해병대 수사단으로부터 전달받고도 국방부 요청에 따라 이첩을 취소한 경북경찰청도 수사 대상이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라고 얘기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채 상병 사건 특검법을 세 차례나 거부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위선도 윤 대통령에 버금간다. 한 대표는 지난 6월 전당대회에서 ‘제3자 추천 방식 채 상병 특검법’ 발의를 약속했지만 뭉개고 있다. 국민이 바라는 한 특검 수사는 필수다. 그전까지는 공수처가 최선을 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