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극단 신작 연극 ‘퉁소소리’
고전 ‘최척전’을 고선웅이 각색·연출
전란에 휘말린 민초들의 끈질긴 삶

연극 <퉁소소리>의 한 장면. 옥영과 아들 부부는 작은 배 한 척에 의존해 험난한 귀향길에 오른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1621년(광해군 13) 조위한이 쓴 <최척전>은 임진왜란·정유재란과 명·청 교체기의 혼란 속에 남원의 최척과 옥영 부부가 수차례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30여년의 과정을 그린다. 고전소설로는 보기 드물게 일본, 중국, 안남(베트남) 등 광범위한 배경을 아우르는 ‘코즈모폴리턴적’ 시각을 보인다.
서울시극단 신작 <퉁소소리>는 <최척전>을 원작으로 한다. 서울시극단장 고선웅이 각색하고 연출을 맡았다.
배우 이호재가 “늙은 최척 역을 맡아 이 자리에 섰습니다”라고 소개하며 연극이 시작된다. 노(老)최척은 이후에도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듯 대부분 시간 무대에 머물며 최척의 삶을 관찰한다. 최척은 옥영과 혼인을 언약하지만,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으로 전장에 나선다. 전장에서 가까스로 살아 돌아와 혼인하고 아이까지 낳지만 얼마 후 정유재란이 발발한다. 최척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 나섰다가 가족과 헤어진다. 옥영은 남장을 한 채 일본 상인을 만나 일본 배를 타고, 최척은 중국으로 흘러간다. 우연히 안남까지 간 최척은 기적같이 옥영을 만나 합치지만, 청의 발흥은 다시 이들에게 시련을 안긴다.
30여년 세월을 압축해 보여주기에 극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배우들의 대사가 많고 빨라 정보의 양도 많다. 한눈팔거나 음미할 새 없이 연극이 이어진다. 화려한 세트, 의상, 조명으로 눈을 사로잡지 않으면서도, 이야기의 흐름 자체에 관객을 몰입시키는 맛이 있다. 옥영과 며느리 홍도는 결혼, 이주 등 삶의 주요한 결정에 대해 남성의 선택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강하게 밝히는 주체적인 여성으로 등장한다.

연극 <퉁소소리>에는 관록의 배우 이호재가 나이 든 최척 역으로 등장한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 문화 많이 본 기사
최척과 옥영 부부, 두 아들, 며느리, 사돈 등은 역사의 거센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인간 세상에 변고가 많아서 만남과 헤어짐이 일정치 않다”는 대사가 이러한 상황을 함축한다. 고되고 불운한 삶을 살면서도 인물들은 “일단은 살아야지”라고 말한다. 모든 가족이 천신만고 끝에 귀향해 “이 어찌 사람만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라며 기뻐하지만, 극은 어떠한 천지신명의 도움도 없이 온전히 ‘사람의 힘’만으로 진행된다. 인물들이 위기에 닥칠 때마다 선의로 가득 찬 이웃들이 나타나 도움을 준다. 일본 사람, 명나라 사람, 청나라 사람 할 것 없이 인간 심성에 내재한 연민의 마음으로 기꺼이 조력자가 된다. 한국어를 중심으로 일본어, 중국어 대사도 짧게 등장하는데, 가장 자주 나오는 말은 “괜찮아” “다이조부” “메이콴시”다. 동아시아의 농부, 상인, 하급 군인들은 전쟁의 신, 역사의 손길, 황제의 권력에 아랑곳하지 않고 가련한 서로에게 도움을 준다.
고선웅 단장은 지난 15년간 <최척전>의 무대화를 꿈꿨다고 한다. 고 단장은 최근 프레스콜에서 “사람이 왜 살아야 하는지, 삶이 왜 축복인지에 대해 쉽고 감동적이고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옥영 역에 정새별, 최척 역에 박영민이 출연한다. 거문고, 가야금, 해금, 퉁소, 타악기로 구성된 5인조 악단이 인물의 대사와 동선에 맞춰 절묘하게 연주한다. 인터미션 포함, 150분. 27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연극 <퉁소소리>의 한 장면. 세종문화회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