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풍기·마라탕·경장육슬…알면 알수록 ‘짬뽕’인 중국집 메뉴판

한성우 국어학자

(24) 중국집과 짬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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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우리 한자음대로 읽는 ‘동파육’
산둥 방언이 묻어나는 ‘유린기’
작장면 → 자장몐 → 짜장면부터
‘완전 번역’ 양꼬치·볶음밥까지

복잡다기한 음식 표기법 보면
우리 한자음·중국식 발음 ‘짬뽕’
‘한국식 중화요리’ 유래와 닮아

‘관(館), 루(樓), 각(閣), 성(城), 원(園·院), 장(莊), 춘(春), 반점(飯店)’이 접미사처럼 붙는 음식점이 있다. 한자로 적고 읽어야 뜻이 잘 들어오니 한자의 원산지인 중국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중국에서 기원한 음식을 취급하니 합당한 이름을 붙여줘야 하는데 우리의 입에 가장 잘 붙는 것은 ‘중국집’이다. 처음에는 ‘청요리집’으로 불리다가 ‘중식당, 중화요리집’ 등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역시 중국집이 가장 익숙하다. ‘양식집’과 ‘일식집’을 고려하면 ‘중식집’으로 불려야 하지만 우리는 그리 안 한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화교들이 그 집에 살기도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고, 정작 음식점을 운영하는 화상(華商)들은 이렇게 불리는 것을 싫어한다지만 어쨌든 중국집이다.

이 중국집에 가서 메뉴판을 살펴보면 말 그대로 잡탕 혹은 짬뽕을 발견하게 된다. ‘동파육(東坡肉)’은 우리의 한자음으로 읽은 것이 확실한데 ‘깐풍기(乾烹鷄)’는 정체불명이다. 중국집의 대표 메뉴인 ‘짜장면(炸醬麵)’은 중국어식 발음과 표기를 두고 수십년간 논쟁을 벌여왔다. ‘짬뽕’과 ‘우동’은 분명 중국집의 메뉴인데 한자로는 표기할 수 없다. 여기에 최근에 중국에서 온 이들이 중국 현지의 음식을 파는 식당이 더해지는데 이런 음식점들은 중국집이라 불리지 않는다. 이들은 ‘마랄탕(麻辣탕)’과 ‘마랄향과(麻辣香鍋)’를 ‘마라탕’과 ‘마라샹궈’라는 이름으로 팔고 ‘경장육사(京醬肉絲)’를 ‘경장육슬’이란 이름으로 판다. 이런 복잡다기한 이름은 우리말 속의 한자어, 귀화어, 중국어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한자 학습의 미래까지 생각게 한다.

동파육과 팔보채…정통 한자와 한자어

중국집 메뉴는 비교적 싼 값에 배를 채울 수 있는 ‘식사부’와 비싼 돈을 내고 맛을 즐길 수 있는 ‘요리부’로 구별된다. 요리 쪽의 메뉴를 보면 동파육과 팔보채 등이 보이는데 이는 정통 한자와 한자어로 이해할 수 있는 이름이다. ‘동파육’은 한자로는 ‘東坡肉’이라 쓰는데 고기 요리이니 한자 ‘肉’과 통하기는 하는데 ‘東坡’는 뜻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이 요리의 유래는 송나라 시인 소동파(蘇東坡)를 알아야 하니 한자와 한문 공부를 어느 정도 해야 요리 이름의 맛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팔보채(八寶菜)’는 한자만 알아도 그 요리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여덟 가지의 귀한 재료로 만든 음식이고 여기에 쓰인 ‘菜’는 본래 나물을 뜻하지만 그 뜻이 넓어져 음식 자체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는 정도의 한자 지식이 있으면 된다.

이렇듯 한자 자체로 중국집의 요리를 가늠할 수 있게 된 것은 삼국시대에 전해진 한자 덕분이다. 삼국시대에 전해진 한자와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단어인 한자어는 우리의 언어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한자는 본래 글자 하나가 곧 단어이니 한 음절로 그 뜻을 나타낼 수 있어 새로운 단어를 만들기가 매우 쉽다. ‘民(백성 민)’과 ‘家(집 가)’를 합치면 ‘民家’가 되고 한자를 아는 이들은 그 뜻이 금세 파악된다. ‘民’이 앞에 붙은 ‘民族, 民心, 民主’ 등도 한자의 뜻을 헤아려 보면 뜻을 파악할 수 있다. ‘家’가 뒤에 붙은 ‘農家, 廢家, 歸家’ 등도 마찬가지다. 고유어로도 이런 뜻을 나타내는 단어를 만들 수 있지만 길이가 길어질 수밖에 없고 ‘농사꾼의 집’이나 ‘집으로 돌아가다’와 같은 구로 표현해야 하니 한자어는 여러모로 편리하다.

한자어의 조어력이 엄청난 힘을 발휘한 것은 근대이행기였다. 새로운 사물과 개념이 생기면 그에 따라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야 했지만 한자는 어느 순간 이를 포기하고 기존의 글자를 조합해 새로운 단어를 만들게 된다. 서구의 문물과 사상이 물밀 듯이 밀려오는 시점에서는 더더욱 이 방법이 필요하다. 이 시점에 본래 번개를 뜻했던 ‘電(번개 전)’, 배운다는 뜻의 ‘學(배울 학)’과 같은 글자들은 엄청난 조어력을 보인다. ‘전기, 전자, 전력, 전압’ 등과 같이 끊임없이 확장하며 단어를 만들 수 있었고 ‘전화기, 전신주, 전자기’ 등으로 더 확장될 수 있었다. 새로운 학문은 ‘수학, 과학, 물리학’ 등으로 받아들여졌고 그것을 연구하는 이는 ‘수학자, 과학자, 물리학자’로 표현하면 되니 무궁무진한 조어가 가능하다.

깐풍기와 짜장면…중국어의 유입과 귀화

요리부의 깐풍기는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다. 한자로는 ‘乾烹鷄’로 쓰니 우리의 한자음대로 읽으면 ‘건팽계’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중국어식으로 읽어야 한다. 그렇다면 ‘간펑지(ganpengji)’가 되어야 하는데 뭔가 이상하다. 앞의 두 음절도 이상하지만 마지막 음절은 닭을 재료로 한 ‘기스면(鷄絲麵), 유린기(油淋鷄)’ 등에서 모두 ‘지’가 아닌 ‘기’로 나타난다. 이는 중국어이기는 하되 산둥 지역의 방언 발음으로 읽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의화단 사건 이후에 산둥지역의 중국인들이 가까운 한반도로 대거 건너왔고 그들 중 상당수가 음식점을 운영하다 보니 이들의 방언으로 음식 이름이 굳어진 것이다.

더 사정이 복잡한 것은 짜장면이다. 이 음식은 밀가루와 콩으로 만든 장(醬)과 각종 재료를 볶아서 만든다는 의미에서 ‘작장면(炸醬麵)’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그런데 이것이 중국 본토의 음식이라기보다는 인천 지역에 자리를 잡은 화교들이 부두 노동자를 위해 개발한 것이니 우리도 처음부터 이들의 발음을 따라 이 음식을 부르기 시작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는 ‘자쟝몐(zhajiangmian)’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중국인들의 ‘炸醬’ 발음이 우리 귀에는 ‘짜장’으로 들리고 익숙한 한자 ‘麵’은 ‘면’으로 발음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짜장면’이 됐다. 외래어 표기나 발음에 관한 규정보다 이 음식과 그 이름이 먼저 정해지고 퍼졌기 때문에 규정에 따른 ‘자장면’과 오랜 기간 치열한 싸움을 벌이다 결국 ‘짜장면’과 ‘자장면’ 모두 인정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것들은 한자에 기반을 두었지만 우리의 한자음이 아닌 중국어의 발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이후에 변화되어 우리말의 일부가 된 단어와 유사하다. ‘김치’는 ‘침채(沈菜)’가 기원인 것으로 보는데 ‘김치’가 우리 고유의 음식으로 인식되듯이 김치 또한 본래 한자어가 아닌 것처럼 인식된다. ‘배추’는 ‘백채(白菜)’가 아니라 중국식 발음에 따라 ‘배추’로 수용되었으며 ‘시금치’ 또한 ‘적근채(赤根菜)’의 중국식 발음대로 받아들여진 뒤 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패’는 본래 ‘퇴포(推포)’였는데 중국식 발음으로 받아들이다 보니 우리의 한자음과는 너무 멀어져버렸다. ‘조리’는 본래 중국어로는 ‘자오리’로 발음되는 ‘조리(조籬)’인데 마치 고유어처럼 인식된다. 이러한 단어들은 ‘귀화어(歸化語)’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이 땅에 건너와 함께 살지만 우리가 때로는 이방인 취급을 하기도 하는 중국집의 주인들 화교(華僑)와 유사하다.

마라탕과 경장육슬…새로운 중국어의 유입

중국 음식을 팔되 중국집으로 불리지는 않는 음식점이 있다. 한·중 수교 이후에 이 땅으로 온 중국 동포나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음식점이다. 이들은 양꼬치나 마라탕을 전문적으로 취급하기도 하고 여러 종류의 중국 음식을 팔지만 한국화된 중국 음식을 팔던 이전의 중국집과는 달리 ‘진짜 중국 음식’을 판다. 본래 중국에서 살던 이들을 대상으로 하기도 하니 메뉴판도 간체자로 쓰여 있는 경우가 많고 한글로 적더라도 번역이 아닌 중국어 발음 그대로 적는다. 양꼬치와 마라탕 전문점에서도 다른 요리를 취급하기도 하는데 이 또한 중국집에서 먹던 것과는 다르다.

‘양꼬치’와 ‘마라탕’은 묘한 대조를 이룬다. 양꼬치는 중국집의 전통적인 메뉴가 아니라 꽤나 늦게 들어온 음식이고 ‘羊肉串’으로 쓰니 우리의 한자음인 ‘양육관’이나 중국어식 발음인 ‘양러우촨’으로 해야 하지만 ‘볶음밥’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번역해서 쓴다. 반면 마라탕은 ‘麻辣탕’이라 쓰니 우리의 한자음대로라만 ‘마랄탕’이 되어야 하지만 중국어 발음대로 쓰고 이는 ‘마라샹궈(麻辣香鍋)’도 마찬가지다. 이런 집에서는 탕수육과 비슷한 ‘锅包肉’도 ‘과포육’이 아닌 ‘꿔바러우’로 판다. 땅에서 나는 신선한 재료 세 가지로 만든 ‘地三鲜’은 중국어식 발음 ‘디산시엔’이 ‘삼선짜장’에 익숙한 이들의 발음인 ‘지삼선’과 경쟁하고 있다. 여전히 우리의 한자음이 개입되기도 하지만 점차 중국어의 발음으로 대체되는 경향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기를 실처럼 가늘게 썰어 조리한 후 전병에 싸서 먹는 ‘경장육슬’은 매우 흥미롭다. ‘京酱肉絲’라고 쓰니 ‘경장육사’라고 하든가 ‘진쟝러우스’라고 해야 하는데 마지막 글자만 중국어로, 그것도 우리말로 치면 ‘ㄹ’을 받침으로 붙이는 소위 ‘얼화(儿化)’가 적용돼 ‘슬’이 된다. 이미 ‘유산슬(溜三絲)’에서도 나타난 것이긴 하지만 이제는 중국어의 발음 습관까지 반영된 이름이 쓰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해삼과 돼지고기에 소스를 얹은 음식인 ‘하이선저우쯔(海參주子)’를 ‘해삼쥬스’라 하고, 돼지고기를 다져 둥글게 튀긴 ‘난젠완쯔(南煎丸子)’를 ‘난자완스’라고 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제는 중국 현지의 발음이 있는 그대로 들어와 반영되는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다.

짬뽕과 짬뽕어, 그리고 새로운 한자

짬뽕과 우동은 중국집의 기본메뉴이기는 하나 중국 음식이 아니다. 짬뽕은 일본 나가사키의 화교가 중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개발한 음식이 이 땅에 들어와 변형되고 발전된 것이다. 그래서 짬뽕은 중국에서는 ‘한식 초마면(韩式炒码面)이란 이름으로 소개된다. 우동은 그 이름이 중국의 물만두인 ‘혼돈(餛飩)’에 기원을 두고 있지만 일본에서 개발된 만큼 일본 음식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중국집에서 해산물과 채소를 볶은 것에 국물과 국수를 넣은 다루몐(打滷麵)과 비슷하게 조리한 후 우동이란 이름으로 파는 것이다.

이리 보면 중국집은 취급하는 음식부터 그 음식의 이름까지 ‘짬뽕의 짬뽕’이다. ‘짬뽕’은 이 음식이 소개되기 훨씬 전인 1930년대에도 여러 가지가 뒤섞인 것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20세기 초부터 소개되기 시작한 청요리는 이 땅의 음식과 짬뽕이 되면서 한국식 중화요리가 되었다. 그 음식의 이름은 모두 한자로 적을 수 있으니 우리의 한자음 발음과 중국식 발음이 짬뽕이 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한자가 이 땅에 전해지고 한자어가 널리 퍼져나간 상황과 유사하다. 중국집 덕에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음식의 폭이 넓어졌듯이 한자어가 우리말의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땅으로 이민 온 중국어 중 일부는 우리말로 귀화해 중국어인지 알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 시점에서 한자와 한자어, 그리고 중국어를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한자는 동아시아 세 나라가 공유해오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한자가 필수가 아닌 우리는 한자 교육을 소홀히 하면서 한자가 점차 쓰이지 않게 되고 한자어에 대한 이해도도 떨어지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표기의 편리를 위해 이전의 한자와는 다른 간체자를 고안해 이제는 전면적으로 쓰고 있다. 미래 세대는 한자를 배워야 할 것인가? 배운다면 이전의 번체자를 배워야 하는가 아니면 중국의 간체자를 배워야 하는가? 간체자로 쓴 중국어는 우리의 한자음으로 읽어야 하는가, 아니면 중국어식 발음으로 읽어야 하는가? 중국집의 변모 과정을 지켜보면서, 바뀌는 음식 메뉴와 변해가는 이름을 곱씹어보면서 한번쯤은 생각해볼 만한 문제이다. 중국집의 짬뽕과 짬뽕어는 그래서 맛과 의미가 깊다.

■필자 한성우

[한성우의 말과 글의 풍경]깐풍기·마라탕·경장육슬…알면 알수록 ‘짬뽕’인 중국집 메뉴판

한국어의 방언과 말소리를 연구하는 국어학자이다. 삶 속의 말과 글을 쉽게 이해하고 깊게 생각하도록 돕는다. 첼로를 사랑하는 목수로서 또 하나의 삶을 살고 있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해 박사까지 마쳤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어규범정비위원회 위원이며, 한국방언학회 수석부회장이다. 문화방송(MBC) 우리말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방언정담> <우리 음식의 언어> <노래의 언어> <문화어 수업> <말의 주인이 되는 시간> <꿈을 찍는 공방> <방언, 이 땅의 모든 말>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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