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국 정부는 사도광산 추도식에 들러리 설 작정인가

일본 사도광산 내 터널. 서경덕 교수 제공·연합뉴스

일본 사도광산 내 터널. 서경덕 교수 제공·연합뉴스

일제강점기 일본 사도광산의 조선인 강제노역 노동자 추도식이 오는 24일 니가타현 사도시에서 열린다. 이 추도식은 지난 7월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당시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에 약속했던 사안이다. 하지만 행사를 사흘 앞둔 21일까지도 한·일 양국은 추도사 내용과 식순, 일본 정부 참석자에 대해 합의하지 못했다고 한다.

일본은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한국에 조선인 노동자 관련 전시물 설치, 매년 추도식 개최 등을 다짐했다. 이해 당사국인 한국이 이를 받아들였고, 사도광산은 컨센서스(전원동의) 방식으로 세계유산이 될 수 있었다.

올해 추도식 개최 시기는 당초 7∼8월로 논의되다가 몇차례 늦춰지더니 11월24일로 최종 확정됐다. 구체적 행사 방식을 놓고 양국이 이견을 보였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추도식 명칭에 ‘감사’ 표현을 넣자고 요구했는데, 한국은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강제성을 희석시킬 수 있다며 반대했다. 결국 공식 명칭은 ‘사도광산 추도식’으로 정해졌다. 정부 참석자는 한국이 차관급 이상을 요청했지만 일본은 답을 주지 않아, 추도식이 임박했음에도 미정이다.

사도광산 추도식은 조선인 강제동원의 아픈 역사를 되새기고, 피해자를 기리는 행사여야 한다. 올해는 첫 행사인 만큼 그 의미는 각별하다. 그래서 추도사 내용과 세부 프로그램이 중요한데 양측이 아직도 결정하지 못했다니 이해하기 어렵다. 추도식은 일본 지자체와 민간단체로 구성된 실행위원회 주관으로 열리는데, 조선인만이 아니라 일본인도 포함한 전체 노동자가 추모 대상이다. 그동안 강제성을 부인하고 사과·반성 표현을 거부해온 일본이 조선인 노동자를 얼마나 진실하게 추모할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자칫 한국 정부와 유족들이 일본의 ‘세계유산 등재 자축’ 행사에 들러리만 서는 게 아닐지 우려스럽다.

한국인들은 이번 추도식이 어떻게 치러지는지를 주시하고 있다. 일본의 과거사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대일 저자세 외교의 결과가 또다시 뒤통수를 맞는 것이라면 거센 국민적 비난에 직면할 것이다. 일본 이시바 시게루 내각은 한국에 ‘물 반 컵’을 채워줄 최소한의 의지가 있는지가 가늠될 것이다. 일본이 과거사 인식과 태도에서 계속 한국 국민들의 반감을 산다면, 한·일관계는 순탄할 수 없음을 양국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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