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킥’은 요리에서 셰프가 의도한 ‘강한 한 방’을 의미하는 말이다. 보통 어떤 재료가 그 음식의 킥이 되곤 하는데 여행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이거지!’라는 곳이 있다면 거기가 바로 그 여행의 킥이다. 군위로 향할 때만 해도 마음속 킥은 화산마을의 운무, 혹은 일출이었다. 그러나 한밤마을 돌담길을 걸으면서는 고즈넉한 분위기에 취해 ‘이거지!’ 싶었고, 화본역에서는 아련하고 아쉬운 마음에 발길이 돌려지지 않았다. 예상을 넘어서는 독특한 매력이 넘쳤던 군위 3색 마을 여행을 떠나보자.
화산마을 풍차전망대엔 동화 속 풍경이
구불구불 고갯길이 7㎞가량 이어진다. 꼬부랑길 운전이 조심스럽다. 이 길이 맞나 세 번쯤 생각했을 때 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해발 828m 화산의 700m 부근에 위치한 화산마을은 1962년 산지 개간정책에 따라 180가구 1000여명이 이주하며 만들어졌다. 개척민들은 땀과 눈물로 산지를 개간하고 고랭지 채소를 키우며 생활했다. 한때 20여가구밖에 남지 않았으나 최근 귀촌하는 사람들이 늘며 56가구 12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하늘전망대’이다. 차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으로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거대한 운무가 펼쳐져 있다. 구름바다가 마을을 떠받들고 있는 모습이다. 불쑥 신선이 나온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다. 전망대 뒤 바위에는 이곳을 다녀간 서애 류성룡이 쓴 한시가 새겨져 있는데 ‘신선의 근원은 여기에서 비롯된 인연이 있구나’라고 감상을 남겼다. 하늘전망대에서 차로 5분만 내려가면 ‘풍차전망대’가 나온다. 이날 사람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당연히 운무였다. 운무 사이로 북쪽에 위치한 군위호가 어렴풋이 보이면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주민들은 이곳의 절경을 널리 알리고자 풍차를 설치하고 주변에 꽃을 심었다. 방송인 전현무씨가 근처 캠핑장에서 캠핑하는 모습이 예능 프로그램에 방영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됐다. 대구 시내에서 1시간 정도면 올 수 있고 차로 전망대까지 바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숙박을 한다면 운무는 물론 일출, 일몰에 청정 바람까지 온전히 다 경험할 수 있다.
깊은 산속 ‘미완의 산성’
앙코르 유적지를 닮았네
2개의 전망대를 거쳐 찾아간 곳은 ‘화산산성’이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곳에 차를 세우고 나면 어떤 안내판도 보이지 않지만 당황하지 말고 산으로 향하는 계곡을 건너면 된다. 계곡을 우측에 두고 1분만 올라가면 ‘화산산성 100m’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울퉁불퉁 돌이 많아 걷기 좋은 등산로는 아니지만 경사가 완만해서 큰 부담은 없다. 흔히 생각하듯 성벽을 쌓아 산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은 아니다. 조선 숙종 때 군대를 주둔시키기 위해 돌을 모으고 기초 공사를 하던 중 흉년과 질병이 겹쳐 공사가 중단됐다. 이후로도 성벽을 쌓지 못했고 북문과 수구문만 미완의 상태로 현재까지 남아 있다. 처음 보자마자 앙코르 유적지가 떠올랐다. 규모는 다르지만 숲에 있는 것도 그렇고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점도 닮았다. 영화 <화양연화>에서처럼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비밀이 있다면 이곳에 털어놓고 가도 좋을 것 같다.
한밤마을 돌담길 걷다 만나는 백년가옥
많은 사람들이 돌담길 하면 제주도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이곳에 와본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내륙의 제주도, 육지 속 제주도라 불리는 ‘한밤마을’은 한국관광공사가 시행한 전국 유명 돌담길 평가에서 가장 아름답고 보존이 잘된 곳으로 선정됐다. 총 6.5㎞에 달하는 돌담길은 200여가구가 살고 있는 한밤마을 전체를 감싸며 골목 구석구석 이어져 있다. 돌담의 유래에는 슬픈 사연이 있는데, 대홍수가 지나간 후 논과 밭은 물론 마을 전체가 돌밭이 돼 버린 것이다. 처치 곤란한 돌을 담을 쌓는 데 사용하기 시작했고 오늘날 고색창연한 분위기를 뽐내며 전국에서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다.
좁은 돌담길부터 차 두 대가 다닐 정도로 넓은 돌담길까지 크기도 모양도 다양하다. 푸른 이끼와 더불어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돌담 안쪽으로는 현대식 집도 있지만 100년이 넘은 한옥이 20여채나 남아 있다.
은행나무 두 그루가 만든 ‘골드 로드’
고즈넉한 남천고택 더 멋스럽게 해
그중 남천고택은 가장 크고 오래된 집으로 무려 1836년에 지어졌다. 남천고택 자손들은 한밤마을을 보전하고 알리기 위해 체험객들을 맞고 있다. 예약하면 숙박은 물론 다도꽃차 시음, 된장·간장·고추장 만들기, 김장 체험, 음악회 등을 경험할 수 있다. 남천고택 바로 옆에는 한밤마을의 중심이 되는 대청이 자리잡고 있다. 조선시대 서당으로 건립하여 학문을 닦는 곳으로 쓰였으며 보수를 거쳐 현재는 마을의 주요 행사에 활용되고 있다. 대청 앞과 옆에는 은행나무가 한 그루씩 서 있어 더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대청 앞에는 금레당이라는 한옥카페가 있는데 경치를 더 오래 즐기려는 사람들의 휴식공간으로 애용되고 있다. 돌담은 결국 돌고 돌아 이어지니 발길 닿는 대로 걸어보기로 한다. 한참 만에 사람 몇 명이 모여 있는 집을 만났다. 핑크색 대문이 특이해서 물어보니 <나쁜엄마>라는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집으로 등장한 곳이라고 한다. 돌담과 핑크 대문이 안 어울릴 것 같은데 또 묘하게 잘 어울린다.
화본역 ‘현역 은퇴’하기 전에 꼭…
화본마을에 위치한 화본역은 누리꾼들 사이에서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으로 통한다. 지금도 하루 여섯 번 승객이 타고 내리는 역이지만 중앙선 복선화에 따른 선로 이설로 올해 말 폐역이 예정돼 있다. 1938년 2월 보통역으로 시작해 86년 만에 마침표를 찍는다. 이미 여러 예능프로그램에 나오며 유명해졌지만, 폐역 소식이 알려지며 현역 시절의 모습을 보고자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다. 1930년대 간이역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화본역은 따뜻하면서도 소박하고 정감 있는 분위기를 풍긴다. 어린 시절 간이역을 기억하는 어르신들은 향수를, 간이역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은 복고적인 느낌을 받는다. 입장권을 끊으면 플랫폼에 나갈 수 있는데 지난 역과 다음 역을 표시해둔 옛 표지판과 현대식 표지판이 내외하듯 거리를 두고 조금 떨어져 있다. 늘 이용하던 역도 아니지만 얼마 후면 더 이상 기차가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괜히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이다. 선로 옆에 우뚝 솟아 있는 것은 28m 높이의 급수탑이다. 증기기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저장 탱크로 1950년대까지 활용됐다. 지금은 내부에 백마상과 밖을 내다보는 소녀상이 전시돼 있다. 벽에는 석탄정돈, 석탄절약 등의 글씨가 아련하게 남아 있다.
1930년대 흔적 간직한 간이역
연말 폐역 소식에 발길 이어져
화본역에서 길을 건넌 후 왼쪽으로 내려가면 옛 산성중학교 건물을 활용해 만든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라는 농촌 문화 체험장이 나온다. 건물 내부에는 1960~1970년대 화본마을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교실, 문방구, 만화방, 이발소, 구멍가게, 연탄 가게, 사진관, 전파상 등을 재현해놓았다. 교실 책상에 앉은 어르신의 눈이 그 시절 어린이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운동장에는 달고나 만들기, 오징어 게임 등 예전 놀이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준비돼 있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을 위해 최신 에어바운스형 놀이기구도 있어 누구 하나 소외될 염려도 없다. 남녀노소 다양한 세대가 운동장에 있는 모습을 보며 동네잔치였다던 그 옛날 운동회가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 전현무가 예능 찍은 캠핑장서 하룻밤 보낼까
화산마을 내 여러 캠핑장과 펜션 등 숙박시설이 있어 어렵지 않게 원하는 숙소를 찾을 수 있다. 주민들이 운영하는 군위화산마을체험관도 포털사이트 혹은 전화로 숙박 예약을 할 수 있다. 한밤마을 남천고택에서도 숙박 및 다도, 한식, 국악 등 체험프로그램 참여가 가능하다. 남천고택 홈페이지 혹은 전화로 예약 후 방문하면 된다. 참고로 화산마을은 길이 좁아 일방통행로가 많으니 이정표를 잘 보고 진입해야 한다. 들어가는 길과 나오는 길이 다르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곳곳에 있는 이정표를 보고 운전하는 것이 필수다. 군위화산마을 체험관 0507-1349-6386, 남천고택 054-382-27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