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퇘지의 페로몬과 같다는 ‘땅의 고환’···인간도 홀렸다

박경은 기자

(11) ‘땅의 고환’ 트러플

암퇘지가 반한 속살의 향···더 짜릿하다, 쉽게 가질 수 없어서

[음담패설 飮啖稗說] 수퇘지의 페로몬과 같다는 ‘땅의 고환’···인간도 홀렸다

땅의 고환(testicles of the earth). 이건 도대체 무엇을 지칭하는 걸까. 힌트를 제시한다. 식재료의 하나다.

식재료는 종종 은유의 대상이 된다. 굴을 ‘바다의 우유’로, 강황을 ‘밭에서 나는 황금’으로 칭하는 것이 흔히 접할 수 있는 사례다. 성적인 의미를 담아 표현하는 경우도 많다. 홍합을 ‘동해부인’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것이 대표적이다. 홍합을 먹으면 성적인 매력이 더해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도 탐스러운 붉은색, 풍성한 과즙을 가진 토마토를 오랫동안 ‘사랑의 사과(a love apple)’라고 불렀다.

은근한, 혹은 미루어 짐작할 만한 단어를 적당히 사용할 법하건만 대놓고 ‘고환’이라니. 이다지도 노골적이고 직설적인 표현의 대상이 되는 식재료가 또 있을까. ‘땅의 고환’이 지칭하는 대상은 트러플(송로버섯)이다.

캐비아·푸아그라와 함께 서양 요리 ‘3대 진미’

값비싸고 진귀한 식재료로 꼽히는 트러플은 캐비아, 푸아그라와 함께 서양 요리의 3대 진미로도 불린다. 트러플의 맛을 설명하기는 좀 애매하다. 맛 자체는 담백, 무미하다고 할 수 있는데 트러플은 맛이 아닌 향으로 승부한다. 원초적 욕망을 자극하는 듯한, 야릇하면서 퇴폐적이기도 한 트러플의 향은 전 세계 수많은 미식가를 오랫동안 열광시켜왔다.

트러플 향을 맡아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몇몇 작가들의 묘사를 소개한다. “열대의 오후에 사랑을 나누고 난 뒤 구겨진 침대에서 나는 사향 냄새”(다이앤 애커먼 <감각의 박물학>), “고상한 모임에서 묘사하고 싶지 않은 냄새” “충분히 잘 익고 준비된 트러플에서는 섹스의 냄새가 난다”(엘리자베스 루아드 <트러플>).

[음담패설 飮啖稗說] 수퇘지의 페로몬과 같다는 ‘땅의 고환’···인간도 홀렸다

야릇한 향, 수퇘지의 페로몬과 같아

트러플의 향에 열광하는 것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존재가 있다. 바로 암퇘지들이다. 트러플에서 나는 그 야릇한 향은 수퇘지의 페로몬과 같다고 알려져 있다. 소위 말하는 ‘돼지발정제’ 성분이라는 이야기다. 암퇘지들이 어슬렁거리다 흥분해 땅을 파는 곳이면 어김없이 트러플이 있었다. 이 때문에 유럽에선 땅속에 묻혀 있는 트러플을 캘 때 돼지에게 의존했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이윤기 옮김·열린책들)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세베리노가 부산하게 돼지치기들을 지휘하면서 돼지 모으는 게 보였다./ 그는 돼지 모으는 까닭을 묻는 나에게 기슭의 골짜기로 내려가 송로버섯을 캘 작정이라고 대답했다./ 송로버섯은 베네딕트 수도회의 고위 수도자들이 특히 즐기는 고급 식품으로 노르치아 지방에서는 검은 송로버섯, 그리고 우리가 몸 붙이고 있던 그 수도원 인근 지역에서는 검은 것보다 더 향기로운 흰 송로버섯이 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송로버섯은 여느 버섯과는 달리 땅속에서 자라기 때문에 찾아내기가 몹시 어렵다. 재미있는 것은 송로버섯의 냄새를 맡고 흙을 파고 버섯을 캐낼 수 있는 동물은 돼지뿐이라는 것이다.”

암퇘지를 흥분시키는 이 페로몬 향 때문에 트러플은 최음제로 여겨져왔다. ‘땅의 고환’이라는 별명도 그런 이유로 붙은 것이다.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도 봉헌됐다고 할 정도니 그 유서 깊은 역사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음담패설 飮啖稗說] 수퇘지의 페로몬과 같다는 ‘땅의 고환’···인간도 홀렸다

신이 상찬한 최음제, 부와 권력 있어야 탐미

스페인 코르도바대학에서 송로버섯을 연구하는 발도메로 아로요 등 전문가들이 집필한 책 <우리 산의 보물, 안달루시아의 트러플(Tesoros de nuestros Montes, Trufas de Andalucia)>에는 ‘땅의 고환’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흥미로운 유래가 소개되어 있다. 주인공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프로디테에게 사랑받은 아름다운 청년 아도니스다. 아프로디테의 연인이었던 아레스가 보낸 멧돼지에 의해 죽음을 당한 아도니스의 고환이 트러플이 됐고, 복수의 여신들에 의해 트러플이 땅속에서 자라며 널리 퍼지게 됐다는 것이다. 또 스페인에서는 비유적인 표현이 아닌, 실질적으로 트러플을 지칭하는 말로 ‘criadilla de tierra(땅의 고환)’를 사용했다고 한다.

신들에게 최음제로 상찬받았던 만큼 인간 세상에서도 부와 권력을 쥔 이들은 트러플을 탐했다. 바빌론, 고대 이집트 시대에도 귀하게 여겨졌던 트러플은 고대 로마의 황제나 귀족 연회상에 올라갔다. 최음제라는 이야기에 ‘과학적 근거’를 더한 이는 서양의학의 지배자로 불리는 고대 그리스 의사 갈레노스였다. 그는 트러플을 두고 매우 많은 영양가가 있으며 ‘에로틱한 즐거움’을 유도한다고 평가했다.

중세 때 퇴출…19세기 미식계 ‘인싸’로 복귀

금욕적인 기독교 문화가 지배하던 중세시대를 만나며 트러플은 악마의 음식으로 여겨져 식탁에서 ‘퇴출’됐다. 트러플이 미식 무대로 귀환한 것은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서다. 카트린 드 메디치는 다른 음식문화와 함께 트러플을 프랑스 궁정에 들여왔다. 진귀한 이 식재료는 최음제라는 믿음까지 더해지면서 19세기 프랑스 미식계의 ‘인싸’가 됐다. 발자크, 위스망스 같은 문호들은 트러플의 에로틱한 ‘능력’을 찬양했으며 바이런은 트러플의 향이 창의성을 자극한다며 자신의 책상에 놓아두기를 즐겼다. 사드 후작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피해자들에게 트러플을 먹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의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은 트러플의 에로틱한 ‘미덕’에 대해 설파하는 한편 트러플을 가리켜 ‘주방의 다이아몬드’라고 칭했다.

다이아몬드에 비견되는 트러플의 위상은 19세기 프랑스뿐 아니라 지금도 마찬가지다. 인공재배가 힘들어서다. 이 ‘럭셔리’ 식재료는 오랫동안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등 특정 지역에서만 발견됐다. 지난 수십년간 미국과 중국, 호주, 뉴질랜드 등지에서 인공재배에 성공하긴 했으나 수요를 충족시키기엔 역부족이다. 이탈리아 트러플 판매사인 ‘크레아티바 트러플’ 조나단 타치 대표는 “블랙 트러플은 전 세계 생산량의 60% 정도가 재배를 통해 공급되고 있지만 관리와 생산이 매우 까다롭고 매년 수확량이 동일하지 않아 가격 변동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화이트 트러플은 전혀 재배되지 않기 때문에 매우 높은 희소성과 가치를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화이트 트러플 908g짜리, 2억 넘는 값에 낙찰

실제로 화이트 트러플은 ‘화이트 다이아몬드’ ‘트러플 킹’으로 불린다. 생산량이 한정되어 있고 저장성도 떨어져 생산이 시작되는 10, 11월경부터 이듬해 1월 정도까지만 먹을 수 있다.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주의 알바는 화이트 트러플의 수도로 불린다. 매년 가을 알바에서 열리는 화이트 트러플 박람회는 세계 미식가들을 불러모은다. 이 박람회의 최고 이벤트는 실시간 경매다. 뉴욕, 라스베이거스, 홍콩, 도쿄, 파리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도 실시간으로 참가할 수 있는 이 경매에서 낙찰되는 알바산 화이트 트러플 가격은 매년 흥미로운 국제뉴스로 전해진다. 올해도 지난 10일 열린 실시간 경매에서 홍콩의 한 입찰자가 908g짜리 화이트 트러플을 15만4000홍콩달러(약 2억1500만원)에 낙찰받았다. 1㎏도 안 되는 트러플 값이 2억원을 훌쩍 넘었다. 같은 날 서울 신사동 ‘하이스트리트 이탈리아’에서는 실시간 경매가 생중계되는 가운데 화이트 트러플을 주제로 한 갈라 디너가 열렸다. 이탈리아무역공사, 랑게 몬페라토 로에로(LMR. 알바 등 피에몬테 남동부 지역) 관광청 등이 주관하고 국내의 식품 수입사, 외식업계, 여행업계 관계자 50명이 참석한 이 디너에는 알바에서 공수해 온 화이트 트러플이 사용됐다. 디너를 총괄한 셰프 스테파노 디 살보가 테이블을 돌며 리소토 위에 얇게 저민 트러플을 수북이 올려줬다. “우와, 이렇게 호사스러운 리소토라니요.” 테이블마다 감탄이 쏟아졌다. 곁에 있던 외식업계의 한 관계자가 속삭였다. “이런 고급 트러플은 2g에 1만원 정도 하거든요. 1티스푼이 5g 정도니까 이 정도면 대충 감이 오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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