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행동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일 중 하나는 병원 동행이다. 아픈 사람이 많을뿐더러 혼자 병원에 가면 진찰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돌아오거나, 검사실이나 주사실을 찾아 컨베이어벨트처럼 돌아가는 순례를 미처 마치지 못하고 돌아오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누적되다 보면 병원에 가는 걸 포기하게 되고, 몸이 더 상하게 되니 동행이 꼭 필요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의료급여 1종 수급자이자 지적장애를 가진 김씨도 마찬가지다. 병원에 가야 할 일이 있을 때마다 김씨는 주변 사람에게 “의사가 말을 해도 뭔지를 모르겠으니 같이 가자”고 말한다. 보통 진료실 안에서 듣게 되는 말 중에는 비의료인이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용어가 적지 않다. 환자의 장애 특성, 의료지식의 수준, 문해력은 의료인이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지만 현실에서 그런 의사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김씨는 대부분 동행인의 조력을 바탕으로 의료인과 소통해왔다. 이때 동행인의 의무는 김씨 본인의 의사와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진료 선택이 가능하도록 돕는 것이다. 통증을 느끼는 주체, 치료를 통해 완화를 경험하는 주체는 오직 환자 본인이기 때문이다.
이 경험을 돌아볼 때 나는 보건복지부가 의료급여를 정액제에서 정률제로 개편하는 것을 통해 “적정 의료 이용을 유도”한다거나, “불필요한 이용을 자제할 유인”을 만든다는 설명이 납득되지 않는다. 이는 통증을 가진 환자의 주체적 의료 이용을 포기하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적절한 정도의 의료 이용 수준’이라는 것이 정해져 있다고 한들, 환자 본인에게 그것을 오롯이 통제할 권력이 있다고 볼 수 없다. 환자가 스스로 병원에 방문하는 횟수를 조정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의료인의 진료와 그에 따라 산정되는 의료비에 직접 제동을 걸고 나서기는 쉽지 않다. 이는 비의료인과 의료인의 근본적인 차이다.
보건복지부가 밝힌 정률제 개편 배경의 화룡점정은 “수급자의 비용 의식이 약화”되었다는 분석이다. 이 모욕적 말에 담긴 사실관계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수급자는 누구보다 강한 ‘비용 의식’을 갖고 산다. 매년 수급비가 오른다지만 액면가만 오를 뿐 실제 물가에 한참 못 미친다. 그사이 어떤 이는 병원비를 내기 위해 생계급여를 당겨썼고, 부족해진 생계비를 메우려 주거급여를 우선 쓰다가 월세를 내지 못했다. 또 다른 수급자 이씨는 최근 백내장 검사를 받기 위해 안과에 방문했다가, 검사 내용에 급여와 비급여 항목이 뒤섞여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의료급여로는 해결되지 않아 한국실명예방재단에 별도의 지원금을 신청하였고, 다행히 지급 심사를 통과해 검사를 마저 진행할 수 있었다. 아프기 시작할 때마다 민간 단체의 지원에 기대야 하고, 이에 실패하면 치료도 포기하는 이들에게 비용 의식을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의료급여 수급자들은 벌써 내년이 두렵다. 이씨는 복지부의 정률제 개편 시도에 대해 “병원에 다니지 말란 소리”라고 일축했는데, 여기엔 단지 비용 증가에 대한 우려만 담겨있지 않다. 의료급여 수급자를 ‘비용 덩어리’로 보고 통제 대상으로 삼으려는 정부 관점에 대한 항의다. 가난한 이들을 짐으로 취급한 복지부는 정률제 개편을 철회하고, 사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