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0과 민주당의 자살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

트럼프의 기록은 화려하다. 미국 역사상 임기 중 두 번이나 탄핵당한 유일한 대통령. 91개 혐의로 기소돼 34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된 인물. 차별과 혐오의 일급 전도사. 이런 자를 다시 대통령으로 선택했으니 미국은 어찌된 나라인가.

극적으로 부활한 트럼프는 두 개의 정책 깃발을 올렸다. 하나는 국경에 장벽을 높이 세워(고관세, 이민통제와 추방) 세계화로 망가진 제조업과 일자리를 보호한다는 미국우선주의다. 다른 하나는 감세·규제완화·정부지출 삭감이라는 올드한 냄새 짙은 정책 기조다. 트럼프·머스크 동맹이 주도한다. 반세계화 미국우선주의는 기왕의 리버럴 세계질서의 종말을 뜻한다. 하지만 트럼프의 기조에서 우리는 한 발은 반세계화 포퓰리즘, 다른 한 발은 신자유주의에 담근 독특한 잡종을 본다.

나름 노동자에게 손을 내밀지만 매우 친기업적이고 지대추구적이며 반생태적인 트럼프판 ‘상인적 우파’에 얼마나 전환의 파고를 넘는 미래가 있을까. 고삐 풀린 사기업에 너무 많은 것을 넘겨주고 사회생태적 전환을 위한 국가능력을 파괴하는 트럼프 스타일로는 막강한 국가능력으로 무장한 중국과의 경쟁에서도 승산이 없다. 어쨌든 선거 여신은 그의 손을 들어 주었다.

구체적으로 선거 결과를 보자. 첫째, 트럼프는 선거인단뿐만 아니라 전체 득표수에서도 해리스를 앞질렀다. 유례없는 일이다. 인종, 성별, 교육수준, 소득수준 등 모든 유권자 그룹에서 트럼프 지지세가 확대되었다. 이에 더해 공화당은 상원과 하원 모두에서 승리했다.

둘째, 교육수준과 소득수준에 따라 표심이 갈렸는데 저학력 노동계층이 압도적으로 트럼프를 지지했다. 백인 남성 블루칼라 다수가 트럼프를 지지한 것은 이전과 같다 해도 저학력·저소득 계층이 민주당을 떠나 트럼프의 포퓰리즘에 포섭된 것은 큰 변화다. 인종적 측면에서도 민주당 지지가 우세했던 흑인과 라틴계, 특히 미국 소수 인종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라틴계 유권자에서 트럼프 지지가 크게 늘었다. 두 개 전선 즉, 계급계층적 균열선과 인종적 균열선 모두에서 민주당은 패했다.

셋째, 경제(일자리, 물가)와 이민이 승패를 가른 주 요인이었지만 전쟁과 평화 이슈를 빠트릴 수 없다. 바이든은 우크라이나·가자지구 전쟁에 깊이 개입하고 대규모로 지원했다. 평화의 가치는 상실되었고 전쟁피로감이 높아졌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지원에 반대하고 전쟁 조기종식이 미국의 이익이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전쟁에서도 트럼프는 전쟁 조기종식을 압박한 반면 해리스는 모호한 입장이었다. 트럼프는 반전후보로 비춰졌다.

넷째, 해리스의 득표수를 이전 바이든의 득표수와 비교하면 어떤가. 트럼프는 2020년 대선과 거의 비슷한 득표수를 얻었다. 반면 해리스 득표수는 바이든에 비해 약 1000만표가 빠졌다. 트럼프 득표율이 늘어난 게 아니라 4년 전 바이든을 지지한 상당수 민주당 유권자가 투표를 포기해 트럼프가 이겼다는 말이 된다.

1000만 민주당 유권자들이 투표를 포기하고 민주당이 계급적 균열선과 인종적 균열선 모두에서 패배한 사태와 관련해 버니 샌더스의 발언이 주목받는다. 그는 민주당이 노동자를 저버린 때문이라면서 “노동자계급을 버린 민주당이 노동자계급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했다. 진보경제학자 제임스 갤브레이스의 지적은 더 자극적이다. 그는 이번 선거가 민주당 좌파가 배제된 채 중도파 주도 일변도로 진행됐다고 짚고 이렇게 말한다. “2024년 선거는 자살행위였다. 민주당 지도부는 투표접근성이 약화되는 데 무관심했고 2020년 신규 유권자를 유지하는 데 소홀했으며 미약한 당내 좌파진영을 묶어두는 데 적극적이었다. 늘 하던 대로 유명인의 지지와 정체성 정치로 이를 은폐하려 했다.”

더 해명해야 할 부분이 있다. 이번에 팀스터스 노조는 대선중립을 선언했다. 바이든이 이 노조에 거액의 공적자금을 투입했음에도 말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지원받은 지역인데 지지율이 감소한 경우도 있다. 학자들은 노동자계층의 선택에서 계급적 불만만이 아니라 인종적, 젠더적 정체성을 함께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다중적 정체성들은 어떻게 얽혀 있으며 정치세력은 이를 어떻게 활용하며 접합시켰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 꽁무니만 좇을 게 아니라 반세계화 다극화 시대에 맞게 독자 전략을 짜야 할 때다. 이 나라에서 정치적 자살은 윤석열의 것이다. 하지만 이재명의 민주당도 엘리트정당으로 전락해 패배한 미국 민주당에서 교훈을 얻어야 하며 오늘의 답답한 교착상태에 큰 책임감을 느껴야 마땅하다.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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