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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래와 강아지풀

강아지풀은 흔하디흔한 풀이다. 화려한 꽃이 피는 식물도 아니다. 그저 길가나 풀숲 귀퉁이에 자라 눈여겨보는 이도 없다. 사는 곳이 어디건 주인 행세도 하지 않는다. 긴 수염이 달린 좁쌀 같은 열매가 강아지 꼬리를 닮아 한자로는 구미초(狗尾草)라 한다.

아무도 눈길 한번 주지 않는 강아지풀을 시인 박용래는 ‘가장 사랑하는 한마디의 말’이라 했다. 고개 숙인 강아지풀의 턱밑을 간질이며 강아지 어르듯 ‘오요요 내 강아지’ 하는 시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강아지풀을 집에서 기르는 털북숭이 강아지로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 그의 만물 사랑은 넓고도 깊어 동식물 구분이 없었다. 그는 강아지풀을 보고 “빛을 바라며 어둠 속에서 우는 어린이 같은 존재”라고 했지만, 나는 시인을 떠올렸다.

아주 오래전, 대학 새내기 시절 나는 그를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다. 당시 50대 초반이었던 그가 젊은이들이나 신던 하얀 운동화를 신고 있던 것이 유독 내 눈길을 끌었다. 무척 신선하다는 생각에 “선생님, 어째 운동화를…?”이라고 묻자, 그는 특유의 어눌하고 쭈뼛거리는 말투로 대답했다. “원래 구두를 신고 다녔는데, 술 먹고 하도 자주 잃어버려 구두를 감당할 수 없었어”라고 말하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때까지 나는 천진난만이라는 단어는 어린아이에게만 해당하는 표현으로 여겼다. 형형한 눈빛마저도 순진무구로 수렴되었다. 그때 그의 모습과 어투가 그랬다. 반짝이는 구두보다, 오히려 그의 성정과 더 어울렸던 해진 운동화.

하고많은 꽃들이 지천인데, 강아지풀을 가장 사랑했던 시인. 서정적 풍경을 펼쳐 보이는 시는 모나지 않은 그의 고향 산천과 바람을 닮아 치솟거나 세차지 않다.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눈은 온기에서 비롯됐으니, 품성 그대로다. 시인의 눈시울은 항시 그렁그렁했다. 아예 눈물을 달고 살았다고 해야 할까. 비통하거나 울분의 눈물이 아니다. 인생의 고뇌와 허무에 떠밀린 눈물이 아니라 고향 산천과 만물의 풍정에 감동되어 절로 일어나는 정이었다. 오감으로 느끼는 모든 것들이 마냥 기특하고 갸륵하며, 애잔해서 주체할 수 없는 감동으로 사랑했다. 그를 두고 평론가 고형진 교수는 ‘생래적 서정시인’이라 했다.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는 풀 한 포기에 감응하고 해 질 녘 어스름에 취했던 박용래. 늦가을 그의 무덤가엔 녹물 든 강아지풀이 무성하리라. 새벽이슬같이 영롱하게 응축된 그의 시를 지금 다시 찾는다. 오요요 강아지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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