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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의료는 민주주의의 열망이었다

벌써 잊었는가. 한국의 의료는 민주주의의 열망이었다. 지금 당연한 듯 누리는 전국민의료보험은 오랜 기간 시민들이 싸워서 얻어낸 역사적 산물이다. 사회보험 방식의 의료보험은 1977년에 500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를 대상으로 최초로 시행되었다. 이후 1979년 공무원 및 사립학교 교직원으로, 1988년 군지역의 농어민으로, 이어서 1989년에 전국민의료보험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이것은 수백개로 나누어진 의료보험 ‘조합’ 간의 경쟁을 토대로 했었다. 있는 사람끼리 더 많이 누리고, 없는 사람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이후 민주화의 열망과 함께 수많은 진보적 시민, 노동단체, 전문가, 정치가들이 싸운 결과 2000년에 드디어 연대를 근거로 한 ‘통합’ 방식으로 온전한 전환을 맞이했다. 이 모든 것은 1997년 외환위기와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흐름 및 사회보장제도의 후퇴 속에서 일궈낸 값진 결과였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의료는 정말 24년 전 통합된 전국민의료보험을 획득했던 그때의 의료와 같은 것일까. 과거 시민들이 원했던 의료란 안타까운 죽음을 최대한 막을 수 있는 ‘의술’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오늘날 의료는 서비스와 상품에 가깝다. 공공의료기관은 5%에 그치며(미국 23%, 유럽 평균 50% 이상), 민간의료기관이 대다수인 한국에서 병원은 어느덧 이윤 추구가 당연한 기업으로 변모했다. 하지만 의료의 성격이 이렇게 변하는 사이 보건정책은 상대적으로 정체되어 있었다. 특히 의사 정원은 30여년째 정체되어 있었다. 1990년대 중반 9개 의과대학이 신설되면서 의대 정원이 증가한 후 의사공급 규모는 30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국은 2021년 기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2.26명으로 OECD 국가(평균 3.7명) 중 끝에서 세 번째에 속한다. 한의사를 제외하면, 가장 적은 수치(2.1명)다. 이미 2010년 이후 진행된 의사 인력 추계에서 대부분 ‘부족하다’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 결과 의사의 평균 소득(전문의 인건비 기준)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며, 개원의는 평균 노동자 임금 대비 7.1배(2020년 기준)에 달한다. 그래서일까. 전국의 수재들이 모두 의과대학에 진학하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방은 의사 인력이 부족해지고, 수도권 지역에서도 필수의료과의 의사 수급에 차질이 생겼다.

2023년 3월 대구광역시에서 17세 학생이 4층 건물 높이에서 추락한 뒤 병원 응급실 4곳을 전전하다 2시간 반 만에 심정지로 사망했다. 3차병원만 5곳이 있는 대도시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이다. 여러 문제들이 얽혀 있겠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이미 오랫동안 그 지역의 응급실은 환자가 포화 상태였고 병상은 부족했다는 사실이다. 즉, 응급진료를 위한 의료인력도, 병원도 부족한 것이었다. 그저 소속된 의료진(특히 전공의와 봉직의)과 응급구조대원들의 책임감에만 모든 짐이 떠넘겨 있었고, 그렇게 점차 몸과 마음의 한계치에 도달해 있었다.

올해 초 30여년간 정체되어 있던 의대정원이 한순간에 2000명(3058명에서 5058명) 늘어났다. 하지만 의사인력 부족을 해결한다는 확대 정책을 마냥 반길 수가 없었다. 30여년간 곪은 상처에 칼을 댔건만, 그것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상처를 찌르고 헤집어 놓는 데에 그쳤다는 게 문제다. 더 큰 상처가 발생하지는 않을지 암흑과도 같은 현실 앞에서 애초에 그 취지마저 의심스러워진다. 당장 배출되는 전문의 숫자가 부족하고(전년 대비 20.7% 수준), 사직한 전공의 중 3480명이 군입대 이슈 앞에 놓여 있는 상황이며(매해 입영 가능 인원은 1000명 수준), 다수의 의대생이 휴학계를 내고, 의사국시 응시대상자 중 90%가 미응시한 상황이다.

취지가 어쨌든 현 정부가 올 2월에 제시한 ‘필수의료 정책패키지’는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의사 인력도, 행정적 능력도, 화해와 대화의 의지도 쉽게 찾기 힘든 상황이다. 최근 <뒤틀린 한국 의료>를 발간한 김연희 기자는 책의 말미에 “지금까지 누리던 것 중 무언가는 공동체의 앞날을 위해 손아귀에서 놓아야 할 순간”이 찾아올 수 있다고 말한다. 의사도 시민도 말이다. 그는 자신이 비의료인로서 한국의료의 ‘뒤틀린’ 이면을 말할 자격을 스스로 의심했지만, 시민이라면 사회적 안전망을 걱정하는 누구든 그 자격은 충분하다. 아니, 자격을 넘어 그것은 시민의 의무다. 잊지 말자. 한국의 의료는 민주주의의 열망이었다는 사실을!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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