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에 증언 요청’ 일부 교사로 인정했지만 ‘고의성’ 없어 무죄

유선희·김나연·정대연 기자

법원 판단 근거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위증교사 혐의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뒤 법원을 나오며 동료 의원들과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위증교사 혐의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뒤 법원을 나오며 동료 의원들과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김씨 증언 여부·위증 사실
이 대표, 사전에 인지 못해
변론요지서 확인시킨 행위
“행사할 수 있는 방어권”

‘위증은 유죄·교사는 무죄’
법조계, 이례적 판결 평가
검찰, 즉시 항소 의사 밝혀

법원이 25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위증교사 혐의를 무죄로 선고한 핵심 근거는 ‘고의성’ 여부였다. 재판부는 이 대표가 김진성씨(고 김병량 전 성남시장 비서)에게 증언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일부 위증교사 행위가 있었더라도 ‘위증을 하게 하려는 고의’가 없었다면 죄를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김씨가 스스로 판단해 위증한 것에 대해서는 위증교사 혐의보다 엄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선 위증교사는 무죄로 판결하면서 위증은 유죄로 판결한 것이 이례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이 대표가 2018년 12월 경기지사 선거 토론회에서 한 발언이었다. 이 대표가 2002년 ‘분당 파크뷰 의혹’을 취재하던 최철호 전 KBS PD가 검사라고 신분을 속여 김 전 시장과 통화하는 과정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돼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은 것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이 대표는 “검사 사칭이 아니라 누명을 썼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 발언이 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에 해당한다며 기소했다. 2019년 진행된 재판에서 김씨는 증인으로 나와 “이재명이 누명을 썼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이 대표의 ‘검사 사칭’ 혐의는 1·2심 무죄에 이어 2020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그런데 김씨가 다른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이 대표로부터 증언을 부탁받는 녹취가 나왔고, 검찰은 이 대표를 위증교사 혐의로 기소했다. 새로 시작된 재판의 쟁점은 이 대표가 자신의 혐의를 벗으려고 김씨에게 전화해 ‘김 전 시장이 KBS 측과 협의해 최 전 PD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는 대신 이 대표에게 죄를 뒤집어씌웠다’는 취지로 거짓 증언하도록 했는지였다.

재판부는 김씨가 2019년 재판에서 증언한 “김 전 시장과 KBS 간 교류가 있었고 이 대표를 희생양으로 삼으려 했다”는 취지의 발언이 위증이라고 판단했다. 김씨가 위증한 발언들은 이 대표가 증언하도록 요청한 것이므로 이 대표의 요청은 ‘교사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하지만 재판부는 증언을 요청한 행위가 있었어도, 위증을 하도록 할 고의가 없다면 무죄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한 고의는 ‘교사의 고의’와 ‘정범의 고의’(김씨가 위증을 할 거라는 인식)가 함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위증을 지시한 사람이 거짓임을 인지하고 상대방에게 위증을 하도록 시켰고(교사의 고의), 위증으로 이어질 것(정범의 고의)으로 예측할 수 있어야 고의가 인정된다. 이 대표는 이 두 지점에서 모두 고의가 없었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재판부는 이 대표가 김씨에게 전화 했을 때 자신의 증언 요청 행위가 실제 김씨의 위증으로 연결될지 알지 못했고, 미필적으로나마 예견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 대표가 김씨와 통화할 당시 김씨가 증언을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증언할지도 정해지지 않았다는 게 객관적 사실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김 전 시장과 KBS 간 협의로 이재명을 주범으로 몰려고 했다’는 김씨의 증언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이 대표가 알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 대표가 김씨가 위증할 가능성을 ‘예견’했다 하더라도, 예견만으로는 구체적인 위증 사실까지 알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봤다. 막연히 정범이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정도의 예견으로는 부족하고 “행위의 주체, 객체, 행위, 결과 등 구체적으로 특정돼야 한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검찰은 이 대표가 김씨에게 변론요지서를 보낸 것을 위증교사의 주요 증거 중 하나로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대표가 “자신의 의문에 대해 설명하고 변론요지서를 제공해 확인하게 하는 것이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의 피고인으로서 행사할 수 있는 방어권의 정도를 벗어났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 대표는 김씨의 증언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보기 부족하다”며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이 대표에게 김씨로 하여금 위증하도록 하려는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도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이 대표는 재판 내내 “김씨에게 기억나는 대로, 있는 그대로 말해달라”고 했을 뿐 “위증을 교사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는데 재판부가 이를 수긍한 것으로 해석된다.

차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교사범이나 방조범 같은 경우 자기가 직접 실행을 하는 게 아니다 보니 실행을 하는 정범이 그런 범죄를 한다는 것에 대한 인식도 있어야 된다는 취지로 보인다”면서 “일반적인 시각에선 쉽게 납득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검찰이 즉시 항소 의사를 밝혔으므로 양측은 항소심에서 다시 다투게 됐다. 항소심에서도 교사행위의 고의성이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 부장판사는 “검찰이 추가 증거를 낸다면 고의 인정 여부가 달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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