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덕수 국무총리(가운데)가 2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김건희 여사 특검법 재의요구안을 의결했고, 윤석열 대통령이 재가했다. 권도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국회를 통과한 ‘김건희 여사 특검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김 여사 특검법으로는 세번째, 법안으로는 임기 중 25번째 거부권 행사다. 전날 대통령실과 여당이 대규모 오찬을 한 것도 다음 달 10일 국회 재표결을 염두에 둔 ‘집안 단속’으로밖엔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김 여사 방탄 외엔 어떤 것도 국정 우선순위가 될 수 없다는 것인지 혀를 차게 된다. 윤 대통령과 여당은 국민 다수가 원하는 특검을 언제까지고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임을 알아야 한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특검법 재의요구안을 의결하면서 “위헌” “입법부의 권한 남용”이라고 했다. 앞서 지난 7일 윤 대통령이 대국민 회견에서 특검법에 대해 “반헌법적” “정치 선동”이라고 격분하던 것과 같은 주장이다. 하지만 이번 특검법은 야당이 수사 대상을 명태균씨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두 가지로 축소하고, 여당 요구대로 제3자 추천 특검으로 내용을 수정해 보수 일각도 거부할 명분이 없다고 봤던 것이다. 이런데도 억지 ‘위헌’론으로, 해병대 채 상병 특검법도 그랬듯이, 6차례나 대통령 자신과 가족이 연루된 범죄 의혹 수사를 거부권으로 틀어막으려는 것은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권한 남용·사유화이자, 국민 뜻을 저버린 ‘정치적 배임’과 다를 바 없다.
여당 모습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25일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 초청으로 소속 의원 40여명과 함께 당정 오찬을 하면서 “똘똘 뭉치자”고 했다. 소속 의원 중 4명이 특검법을 찬성했고, 4명만 더 돌아서면 막을 수 없는 특검법 재표결을 노골적으로 겨냥한 말이었다. 하지만 세를 과시하고 단속해서 이탈을 막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면 착각이다. 결국 특검을 요구하는 강력한 민심 때문에 여당 의원도 이탈하는 것이다. 국민 뜻과 눈높이를 따르는 순리는 제쳐두고 엉뚱한 길만 찾고 헤매니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도 질곡을 벗어날 수 없다.
윤 대통령의 여러 회견이 ‘어찌됐든 사과’에 머물고, 국민 신뢰와 국정 동력을 얻지 못한 본질적 이유는 분명하다. 김 여사 문제에서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언제까지고 거부권으로 정치와 국회를 무력화하며 김 여사를 지킬 수는 없다. 김 여사의 선거·공천·이권 개입 의혹과 직결된 ‘명태균 게이트’는 윤 대통령 부부의 생생한 음성 통화가 공개됐고, 지금도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의혹이 쏟아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국정과 민생을 책임지고, 실정을 바로잡아야 할 집권당이 맞는가. 민심을 등진 정권과 정당에는 미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