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롯데그룹 관련 악성 루머로 인해 주요 롯데 계열사들의 주가가 폭락했다. 롯데케미칼, 호텔롯데 등의 유동성 위기로 인해 롯데그룹도 과거의 대우그룹처럼 공중분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 루머의 주요 골자였다.
회사는 사실무근이라는 해명자료를 즉시 공시하면서 폭락을 멈춰 세웠다. 일종의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반도체나 조선업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한 수많은 대기업들의 실적이 워낙 좋지 않다 보니 이런 지라시가 돌아다닌 것 같다.
롯데케미칼의 3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매출액은 연결기준으로 전년도 누적 3분기와 큰 차이 없이 9개월 동안 15조원 이상을 거뒀다.
그러나 영업적자가 전년도 같은 기간 대비 20배 이상 늘어난 6600억원에 달할 정도로 좋지 않다. 9월 말 기준 갚아야 하는 차입금 및 사채가 10조7000억원이 넘을 정도인데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 자산과 단기금융상품 합계가 3조6000억원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넉넉하지 않다.
회사는 회계적으로는 적자지만 영업활동을 통해서는 1조3000억원이 넘는 현금을 벌어들이고 있다. 제조업이라 감가상각비가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회계적으로 적자가 날 수 있다.
건물, 기계장치 같은 유형자산 비중이 워낙 크다 보니 3분기까지 현금으로 발생하지 않는 감가상각비가 7000억원 넘게 비용으로 처리되어 그렇다.
회사는 1조3000억원 넘게 벌었지만 이자비용 3285억원을 냈고 유형자산 취득에 1조8000억원을 썼기 때문에 올해 돈을 남기지 못했다. 3분기까지 롯데케미칼의 차입금과 사채 잔액은 8000억원 이상 증가했다.
비상장기업인 호텔롯데는 3분기까지 3조7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며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9% 가까이 성장했지만 적자 전환을 하고 말았다. 영업손실이 285억원 정도라서 부담되는 수준은 아니다. 이 회사도 유형자산 비중이 크기 때문에 현금으로 지출되지 않는 감가상각비가 3000억원이 넘는다. 실제 영업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현금은 9개월 동안 1431억원이다. 그러나 차입금과 사채 발행 규모가 커서 이자비용 2799억원을 내면 역시 남는 게 없다. 3분기 말 현재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 자산과 단기금융상품 합계는 1조원이 넘지만 갚아야 하는 차입금과 사채 잔액은 7조원 이상일 정도로 재무구조가 좋은 편은 아니다. 단, 호텔롯데의 경우 보유한 부동산 공정가치가 3조원이 넘을 정도로 가용 가능한 비영업자산이 더 있는 편이라 사정이 낫다.
기업의 대출이 많고 이자비용 부담이 크다고 반드시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빌린 돈으로 사업을 잘해서 창출한 영업이익으로 갚으면 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SK하이닉스는 적자에 허덕였고 차입금이 계속 늘면서 이자 부담도 컸지만 올해는 실적 호조로 9개월 만에 차입금을 7조원이나 줄이며 재무구조를 크게 개선했다.
옛날처럼 기업 운영 방식이 엉성한 시대도 아니고 자본조달 기법도 다양해지다 보니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로 대기업이 부도나는 사태는 겪지 않았다. 그렇다고 안심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실적 회복이 안 되면 기업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실적 개선에 시간이 꽤 걸릴 수 있다면 회사는 적극적으로 주주들에게 회사 사업 내용을 알리고 선제적으로 위기 관리를 해야 한다.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불순한 지라시를 막을 수 있고 주주, 임원, 회사 구성원 모두 합심해 이 위기를 넘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