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시도 김의수씨 “국가가 벼랑 끝 내몰아”

형제복지원 피해자 김의수씨가 지난 26일 경향신문과 인터뷰 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지난 17일 오후 9시40분쯤. 형제복지원 피해자 김의수씨(52)가 부산시청 쪽으로 향했다. 수면제가 든 봉투를 들고 있었다. 불 꺼진 시청 앞에서 김씨가 쓰러졌다. 자살 시도였다. 지나가던 시민이 신고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닷새가 지나 의식을 되찾은 그는 퇴원 직후 그는 기자에게 전화했다. “억울하다”고 했다. 그를 지난 26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최근 형제복지원 피해자 2명 숨져
“생존자들 고통 안고 살아간다”
“최근에 (형제복지원 피해자가) 두 명이나 숨졌어요. 한 명은 제 친구인데 최근 만날 때마다 말라가는 거예요. 병원에 갔더니 암세포가 온몸에 다 퍼졌다고 하더라고요. 식도암이었대요. 그 친구는 2심도 못 보고 세상을 떴어요. 마음에 동요가 일더라고요.”
다리를 약간 저는 김씨는 말할 때도 어려움이 있어 보였다. 12살 때 형제복지원에 끌려가 수도 없이 두들겨 맞은 탓에 후유증이 크다고 했다. 그에게 친구이자 피해자인 사람들의 죽음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김씨는 “내가 자살한다면 법무부가 각성이라도 할까 싶었다”고 말했다. 김씨가 요구하는 건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 인정이다. 김씨를 포함한 피해자 13명은 2021년 5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75~87년 부랑자를 선도한다며 일반 시민과 어린이를 불법 납치·감금해 인권을 유린한 사건으로 경찰과 공무원 등 공권력이 개입됐다. 3년 넘게 형제복지원에 갇혔던 김씨는 “도망가면 반쯤 죽는 삶”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개처럼 맞았다”면서 “생존자들은 지금도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3년6개월 만의 승소, “인권침해 사안”
법무부가 상고 제기할까 마음 졸여

형제복지원 피해자 김의수씨가 지난 26일 경향신문과 인터뷰 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1심 재판부는 소송 제기 3년 6개월 만인 지난 1월 “피고 대한민국이 피해자 1인당 1억~4억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배상액은 수용기간 1년에 8000만원을 기준으로 정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은 강제수용으로 인해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었을 것”이라며 “공권력이 적극 개입하거나 허가·지원·묵인해 장기간 이뤄진 인권침해 사안으로 위법성 정도가 매우 중하다”고 밝혔다. 형제복지원 사건의 국가 배상 책임이 인정된 건 1987년 수사가 시작된 후 37년 만의 일이었다.
기쁨도 잠시뿐이었다. 법무부가 불복했다. “배상 의지는 있지만 위자료가 과다하게 산정됐다”는 게 항소이유였다. 법무부는 법원에 위자료 액수 조정을 요청하기도 했다. 김씨는 “국가가 피해자들을 벼랑 끝에 내몰고 거래를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2심도 피해자 손을 들어줬다. 지난 7일 2심 재판부는 “형제복지원 내 가혹행위는 군대조직을 모방한 시설·조직을 갖춰 구조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며 “피해자들의 육체적·정신적 고통은 수용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더 컸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1심이 정한 배상액 산정 기준도 그대로 인정했다.
“1심 때 항소제기 마지막 날까지 새로고침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몰라요. 법무부가 혹시 항소를 제기했을까봐서요. 오후 11시까지 변동이 없었는데 자정을 넘어 보니 항소를 했더라고요. 그걸 본 기분은 참, 말로 표현 못 해요.”
법무부가 대법원에 상고할 수 있는 기한은 28일 자정이다. 김씨는 다시 마음을 졸이며 ‘새로고침’을 누를 자신이 없다. 배상금을 받더라도 30년 넘게 지속된 후유증을 씻어낼 수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국가와 계속 싸워야 한다는 답답함에 화가 났다고 말했다. 김씨는 “국가가 시간을 계속 끄는 건 시간이 아니라 우리 목숨 줄”이라며 “이런 게 ‘2차 가해’ 아니냐”고 했다.
유일한 희망 아들, “더 버텨보겠다”는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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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를 버티게 하는 유일한 희망은 아들이다. 병원에서 의식을 찾았을 때 아들의 얼굴을 보고 ‘아차’ 싶었다고 했다. 김씨는 “의식불명 상태에 있었을 때 아이가 어떤 마음이었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나더라”며 “저도 이 나이에 아버지가 그립고 필요한데 아이도 마찬가지일 거잖아요”라고 울먹였다.
김씨는 휴대전화를 꺼내 배경사진으로 저장해둔 아들 사진을 보여줬다. ‘아드님이 잘 생겼네요’라는 말에 “그래서 배경화면으로 해뒀다”며 웃었다. 인터뷰 내내 볼 수 없었던 표정이었다. 그리고 주문처럼 되뇌었다. “조금 더 버텨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