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표 선거법 1심의 다른 독법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운데)가 2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운데)가 2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 1심 판결로 한국 정치의 판도라 상자 하나가 열리고 있다. 그동안 관례로 덮어두던 것이 법의 철퇴를 맞은 만큼 이제 이게 기본값이다. 속계산이야 다를지언정 여야 모두 ‘충격’으로 보는 결은 매한가지다. 유력 대선주자의 정치생명이 ‘말’ 한마디 때문에 끝날 수 있음에 깜짝 놀랐을 테지만, 그 근저에서 다가오는 공포 또한 감지했을 것이다.

이 대표 1심 판결은 대통령 선거와 관련해선 처음 있는 선거법 위반 판결이었다. 그간 총선이나 지방선거와 달리 대선에선 선거법 위반을 판단할 기회 자체가 없었다. 선거 과정이 아무리 치열했더라도 승자와 패자가 갈리면 고소·고발은 취하하고 털어버리는 게 상례였다. 국가 제1권력인 대통령 권력과 국정의 안정을 배려한 것이다. 반대로 대통령 권력이 패자를 고소·고발로 붙들고 있다면 ‘정치적 탄압’ 논란 속에 정치의 균형은 몹시 흔들리게 된다. ‘승자의 아량’이나 ‘패자의 승복’ 이전의 문제였다. 그 모든 정치적 관행이 깨진 결과가 선거법 1심 판결이었다.

엄한 판결이었다. 국정감사장 답변을 문제 삼아 피선거권 박탈에 이르는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은 정치적 사망선고와 다름없다. 지난 25일 이 대표 위증교사 1심이 무죄로 결론나면서 선거법 당선무효형은 더욱 도드라진 파장을 남기게 됐다. 여론이 지지하는 인물의 정치적 운명을 법원이 결정할 수 있는가라는 정치 감정과 “민의 왜곡”을 불허하는 법의 감각 사이 골짜기는 한층 깊어졌다.

냉정히 보면 법원이 이 대표 혐의 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순간 피하기 어려운 결론이었을 수 있다. 법원은 그동안 다수의 허위사실 공표에 대해 당선무효의 엄한 책임을 물어왔다. 다른 선거와 비교할 수 없는 대선의 규모와 영향력을 감안하면 형량의 강도도 더 셀 수밖에 없다. 다만 전례 없는 일인 탓에 정치인들도 국민들도 이런 구조를 간과했을 수 있다. 당초 100만원 이하 벌금형을 유력하게 점친 전망들은 그 때문일 것이다.

공정하고 엄한 법집행은 앞으로도 이어져야 한다. 우리 사회 신뢰를 떠받치는 법적 안정성의 근간이다. 과거 대선 때마다 벌어지던 선거공학, 정치공학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자칫 팩트체크에 걸릴 거짓말 하나로 모든 게 물거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선거캠프 내부도 이전과는 같을 수 없다. 언제 어떤 정치공학이 나중에 배신과 함께 비수로 돌아올지 알 수 없다. 지금 선거법이 정치인의 말을 과도하게 옥죈다는 토로가 현실에 비춰 틀린 것만은 아니다.

정치의 이 같은 격변이 후퇴인지 진전인지 아직은 가늠키 어렵다. 분명한 것은 정치권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일 터다. 이번 선거법 1심 판결이 선거공학 논란을 일소하는 계기로 나아간다면 이 대표 개인의 아픔과 별개로 정치사에는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 결정적인 것이 남아 있다. 선거법 판결의 모든 긍정적 의미는 결국 법이 공정하고 신뢰할 만해야 성취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1심 법원의 판결은 선거공학 근절은커녕 법을 권력자에게, 승자에게 봉사시키고 종속시키는 일이 되고 만다. 법의 남용이자 타락이다.

문제는 윤석열 정부의 불공정함에 있다. 지난 대선 당시 윤 대통령도 허위사실 공표를 포함해 6건의 고발을 당했는데 단 한 건도 기소되지 않았다. 후보 시절 윤 대통령은 경선 토론회에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여사가) 오히려 손실을 봤다”고 했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사기를 당한 적은 있어도 누구한테 10원 한장 피해 준 적이 없다”고 감쌌던 그의 장모는 잔고증명 위조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대장동 주범 김만배 전 기자와 “친분이 없다”는 취지의 말도 사실은 달랐지만 검찰은 불기소 처분했다. 검찰이 이 의혹들을 제대로 수사한 적도 없다. 법의 잣대가 이처럼 검찰 단계에서부터 선택적으로 굽어지면 신뢰도 승복도 할 수 없게 된다. 법원은 검찰 정권의 불온한 작당에 원치 않는 ‘동조자’로 전락하고 만다.

이 대표 선거법 1심 판결의 논리적 귀결은 결국 ‘검찰개혁’이다. 선택적 기소를 가능케 한 검찰의 기소 독점을 허물지 않으면 권력의 음모와 법의 타락을 막을 수 없음을 ‘윤석열 검찰 정권’이 입증한 때문이다. 윤 대통령과 검찰은 선거법 판결로 내심 쾌재를 불렀을지 모르지만, 정작 그들이 그 칼날의 심판대에 섰음을 알아야 한다. 마치 자신이 겨눈 총구가 한 바퀴를 빙 돌아 자신의 뒤통수를 노리는 어느 포스터의 섬뜩한 경고처럼 말이다.

김광호 논설위원

김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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