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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꿈 다 끝났어요”···이주노동자들, 외신기자 앞에 서다

입력 2024.11.28 06:00

수정 2024.11.28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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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이주노동자들, 첫 외신기자회견 가져

인신매매·체불·산재···열악한 노동현실 증언

“돌아가면 공무원 하려 했는데···다 끝났다”

한국에서 임금체불, 직업성질병, 인신매매 등 인권·노동권침해 피해를 본 이주노동자들이 2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외신기자들을 상대로 자신의 피해사례와 이주노동자 인권실태를 증언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한국에서 임금체불, 직업성질병, 인신매매 등 인권·노동권침해 피해를 본 이주노동자들이 2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외신기자들을 상대로 자신의 피해사례와 이주노동자 인권실태를 증언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Seoul Foreing Correspondents Club(서울외신기자클럽)’이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 앞에서,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로이 아지트는 기자회견이 시작되길 기다리며 내내 목울대 아래를 손으로 만졌다. 경기 안성의 한 농기계 공장에서 일하다 얻은 간질성폐질환 때문이다.

그의 왼쪽으로는 필리핀에서 온 매리 크리스, 캄보디아 출신 틀랑 테피가 앉았다. 이들은 27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외신기자클럽 라운지에서 열린 ‘이주노동자로부터 직접 듣는다’ 기자회견에 발언자로 참석했다.

이주노동자들이 외신기자들 앞에 서서 한국의 이주노동 현실을 알리는 건 처음이었다. 기자회견을 기획한 최정규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는 “예전에는 회견 개최를 거절당한 적도 있다. (이번 회견 개최로) 이제는 한국 이주노동 문제가 국제적으로도 중요한 일이 된 것”이라고 했다.

미국, 대만, 일본, 싱가폴 등지에서 온 20명 남짓한 외신기자들이 자리를 채웠다. 발언자들을 지원해 온 고기복 모두를위한이주인권문화센터 대표, 김이찬 지구인의정류장 대표, 류현철 일환경건강센터 이사장,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도 참석했다.

필리핀 출신 이주노동자 매리 크리스가 2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외신기자들을 상대로 자신의 피해사례와 이주노동자 인권실태를 증언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필리핀 출신 이주노동자 매리 크리스가 2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외신기자들을 상대로 자신의 피해사례와 이주노동자 인권실태를 증언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기자회견이 시작되고 크리스가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공공형 계절노동자로 안성 농장에서 일한 크리스는 한국에 오기 전 ‘미스터 홍’이라는 브로커에게 매달 62만원을 자동이체하는 계약을 맺었다. 계절노동자 계약에 브로커가 개입해 수수료를 받는 건 불법이다. 크리스가 계약한 안성 고삼농협 강당에서 미스터 홍은 스크린에 계좌번호를 띄워 놓고 자동이체 신청서를 작성하게 했다.

크리스가 급여일 돈을 인출해 자동이체를 막자 미스터 홍이 협박했다. “나를 화나게 하지 마라, 조기 귀국시켜버리겠다.” 위협을 느낀 크리스가 도망치자 미스터 홍과 농협을 위해 일하던 통역사는 그의 사진을 올리며 ‘소재를 알려주면 500만원을 주겠다’고 썼다.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인신매매 피해자로 인정받은 크리스는 인도적 체류 비자(G-1)를 겨우 얻었다.

한국에서 임금체불, 직업성질병, 인신매매 등 인권·노동권침해 피해를 당한 이주노동자들이 2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외신기자들을 상대로 자신의 피해사례와 이주노동자 인권실태를 증언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한국에서 임금체불, 직업성질병, 인신매매 등 인권·노동권침해 피해를 당한 이주노동자들이 2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외신기자들을 상대로 자신의 피해사례와 이주노동자 인권실태를 증언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테피는 임금체불 피해자다. 충남 부여의 농장에서 한 달에 2일만 쉬면서 1년 대부분을 하루 11시간씩 일했다. 임금은 8시간에 해당하는 최저임금만 받았다. 사장에게 ‘일한 만큼 달라’고 하니 사장은 거절했다. 다른 데서 일하겠다고 하자 사장은 “200만원을 내놓으라”며 “안 주면 (사업장 변경에 필요한) 서류에 서명하지 않고 불법체류자로 만들겠다”고 했다. 테피는 두려움에 100만원을 입금하고 겨우 사업장변경을 했다.

로이가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로이는 “제가 겪은 일을 시간순으로 설명드리겠다”며 운을 떼었다. 2021년 2월23일 입사 전 건강검진에서는 이상이 없었다. 10개월 넘게 하루 8시간 이상씩 그라인더로 쇠를 갈면서 제대로 된 마스크도 없이 쇳가루를 마셨다고 한다. 기침이 심해졌고, 곧 계단을 오르는 것도 힘들어졌다고 했다. 로이는 말하는 내내 크흠 소리를 내며 기침했다.

“2021년 12월8일, 서울 삼성병원에서 폐 수술을 받았습니다.” 로이는 눈물을 쏟았다. 1분 넘게 말을 잇지 못했다. “폐 기능의 40%를 잃었습니다.” 로이는 산재신청을 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이 조사를 나왔을 때 공장은 신식으로 탈바꿈했고, 공단은 사장의 말만 듣고 산재를 불승인했다고 했다.

외신기자들이 2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이주노동자 인권실태 증언 기자회견에서 한국에서 임금체불, 직업성질병, 인신매매 등 인권·노동권침해 피해를 당한 이주노동자들의 증언을 경청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외신기자들이 2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이주노동자 인권실태 증언 기자회견에서 한국에서 임금체불, 직업성질병, 인신매매 등 인권·노동권침해 피해를 당한 이주노동자들의 증언을 경청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외신기자들은 이들의 말을 들으며 노트북과 공책에 필기했다. 발언자들 발언 뒤 “사업장에 문제를 제기한 적은 없나” “가장 개선이 시급한 제도가 무엇인가” 등 질문을 쏟아냈다.

한 기자는 “로이의 취업을 알선한 고용노동부는 사전에 노동환경을 검증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류 이사장은 “그런 절차가 없다”며 “사업자 스스로 하는 평가나 관리도 미흡하고, 그런 열악한 사업장이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려는 욕구가 높다”고 답했다.

한 기자는 “셋 다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었을 텐데 같은 시스템의 희생자가 됐다”며 “한국에 왜 왔고, 오면서 무엇을 기대했나. 꿈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크리스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왔는데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몰랐다”고 했다. 테피는 “가족을 돕고 내 미래를 위해 약간의 돈을 마련할 수 있을 줄 알았다”며 “지금은 하루하루가 힘들다”고 했다.

로이가 말했다. “한국에 오기 전에 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했어요. 어릴 때 엄마아빠가 돌아가셔서 대학 끝난 다음에 1년만 돈 벌고….” 로이가 울음을 삼키고 말을 이었다. “공무원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지금 폐 Disease(질환) 생겨서 꿈이 다 끝났어요. 이거 완전히 안 낫는 거예요.” 로이가 답변을 마무리 하며 말했다.

“지금은 조금 더 살고 싶다는 꿈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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