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경기도지사로 재직 중이던 2021년 도는 전국 최초로 ‘비정규직 공정수당’을 도입했다. 비정규직 공정수당은 경기도와 공공기관이 직접고용한 기간제 노동자에게 근로계약 종료 시 일한 기간에 따라 기본급의 5~10%를 추가수당으로 지급하는 제도다. 이 대표는 2022년 1월9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수당 지급을 알리면서 “민간까지 확대될 수 있도록 대안을 모색하겠다”고 적었다.
비정규직 공정수당은 이를 받을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범위가 좁은 데다 격차를 해소하기엔 수당 액수도 크지 않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가 고착화하는 현실을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한 마중물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라는 평가가 나왔다.
비정규직 공정수당 도입과 같은 시도로 ‘사이다’로 불렸던 이 대표는 어느새 몸이 무거워졌다. 한때 기본소득을 외치던 그는 지난 4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원칙을 허문 것이고, 윤석열 정부의 부자감세를 비판해온 민주당의 자기부정이었다. 이 대표는 가상자산(코인) 과세에도 엉거주춤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노동계는 이 대표의 ‘세제 우클릭’ 행보가 ‘반도체 특별법’ 논의 과정에서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최근 반도체 연구개발 노동자를 주 52시간 상한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반도체 특별법을 당론으로 발의했다.
이 대표는 지난 11일 한국경영자총협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노동시간을 일률적으로 정해놨더니 집중적 연구개발이 필요한 영역은 효율성이 떨어지고, 노동자들에게도 불리하다는 주장이 있는데 실제로도 그런 것 같다”며 “만약 그런 면이 있다면 개선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반도체 특별법 중 주 52시간 예외 조항과 맞닿아 있는 발언이다.
하지만 삼성전자 위기의 본질은 ‘부족한 노동시간’이 아니라 ‘혁신의 부재’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삼성전자와 함께 주 52시간 규제를 받는 SK하이닉스는 순항 중이라는 점은 노동시간이 본질이 아니라는 점을 방증한다. 아울러 반도체 산업에 예외를 허용하면 디스플레이·2차전지·바이오 산업 등에도 빗장을 열어달라는 요구가 빗발칠 수밖에 없다. 구멍은 또 다른 구멍으로 이어진다.
“구멍 막기 법안(Closing the Loopholes bill)이 의회를 통과했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지난 2월 엑스(X·옛 트위터)에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이 법안은 특수고용직인 화물기사에게 적용되는 최저임금제 격인 안전운임제를 부활시키는 내용, 배달 라이더 등 플랫폼 종사자가 최저임금을 받을 수 있는 근거 등을 담고 있다. 이 대표가 할 일은 주 52시간 규제에 구멍을 내는 게 아니라 호주처럼 노동법에 뚫려 있는 구멍을 막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