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 경영 속에서 유동성 위기설까지 겪은 롯데그룹이 고강도 인적 쇄신의 칼을 빼들었다.
롯데는 28일 정기 임원인사에서 계열사 대표 36%(21명)를 교체하고 임원 22%를 퇴임시키는 등 역대 최대 규모의 인사를 단행했다. 신동빈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은 부사장으로 승진해 경영 전면에 나선다.
60대 이상 임원은 절반 이상이 물러났다. 이는 코로나 팬데믹 시기인 2021년 임원 인사보다 큰 폭이다. 대신 롯데는 1970년대생 대표 12명을 신규 임명해 능력과 성과 중심의 젊은 리더십을 구축하기로 했다.
이번 인사는 대내외 격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 고강도 쇄신을 통해 경영체질을 본질적으로 혁신하고 구조조정을 가속화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결과로 풀이된다. 롯데는 내부 젊은 인재 중용과 외부 전문가 영입, 경영 효율성 강화 등을 적극 추진한다는 방침도 내세웠다.
롯데가 고강도 ‘물갈이’ 인사를 단행한 것은 최근 불거진 유동성 위기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앞서 롯데는 전날 국내 최고 랜드마크이자 그룹 핵심자산인 롯데월드타워를 은행권에 담보로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현재 6조원 가치의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은행권 보증을 받아 ‘롯데케미칼발 자금사정 악화’라는 시장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그룹의 상징인 롯데월드타워까지 담보로 내놓을 만큼 다급한 내부 사정이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롯데는 그룹 위기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조직 슬림화와 사업 구조조정을 천명한 만큼, 이번 인사에서 계열사별 사업 재편작업에 속도를 낼 것임을 나타냈다.
특히 부진한 실적에 위기설의 진원지로 꼽혔던 화학군은 최고경영자(CEO) 13명 중 10명이 짐을 싸는 등 문책성 물갈이 인사가 이뤄졌다. 롯데케미칼 이훈기 대표는 지난 3월 취임해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떠나게 됐다.
유통 부문에서는 호텔롯데의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호텔롯데의 경우 법인 내 3개 사업부(롯데호텔, 롯데면세점, 롯데월드) 대표이사를 모두 바꾸는 초강수를 뒀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취임한 김태홍 롯데호텔 대표는 실적 부진을 안고 1년여 만에 짐을 싸게 됐다.
롯데지주 이동우 부회장을 비롯해 롯데 식품군 총괄대표 이영구 부회장과 롯데 유통군 총괄대표 김상현 부회장 및 주요 식품유통 계열사 CEO는 유임됐다. 롯데 식품군과 유통군은 올해 중 가시적 성과를 내기 위해 사업 실행력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그룹이 쇄신에 초점을 맞춰 대규모 인사를 단행하면서 신 회장의 후계자인 신 부사장의 그룹 내 입지를 높인 것도 주목된다.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과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을 겸임한 신 부사장은 3년 연속 승진하면서 경영 승계에 속도를 높이는 모양새다.
신 부사장은 앞으로 바이오CDMO(의약품 위탁개발생산) 등 신사업의 성공적 안착과 핵심 사업의 글로벌 시장 개척을 진두지휘한다. 신 부사장은 일본에서는 롯데스트레티직인베스트먼트 공동대표, 롯데파이낸셜 대표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