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부터 다중우주까지···데뷔 4년 만에 ‘커리어 하이’ 찍은 에스파

김한솔 기자
그룹 에스파. SM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룹 에스파. SM엔터테인먼트 제공.

‘광야에서 태어나 지구에 잠시 머물다 멀티버스로 떠난 그룹.’

에스파(카리나, 윈터, 지젤, 닝닝)의 데뷔부터 지금까지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에스파는 최근 국내 최대 K팝 시상식인 ‘2024 마마 어워즈’에서 대상인 ‘올해의 노래’를 비롯해 ‘베스트 걸그룹’ ‘베스트 걸그룹 퍼포먼스’ ‘베스트 코레오그래피’ ‘베스트 뮤직비디오’ ‘팬스 초이스’ 등 총 6개 부문 상을 석권했다. 봄에 발표한 첫 정규곡 ‘수퍼노바’ ‘아마겟돈’은 겨울인 지금까지도 음원 차트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지난달 공개한 신곡 ‘위플래시’도 차트 1~2위를 다투고 있다. 데뷔 4년 만에 ‘커리어 하이’를 찍은 에스파의 인기 요인을 살펴봤다.

거대 서사를 영리하게 해체하다

데뷔 초기 에스파. SM엔터테인먼트 제공.

데뷔 초기 에스파.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에스파는 SM엔터테인먼트가 야심차게 추진하던 ‘SMCU(SM Culture Universe)’의 첫 안내자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데뷔했다. 에스파는 ‘광야’로 불리는 가상공간에서 자기 아바타 ‘아이(ae)’와 교감하고 멤버들과 아이 사이를 갈라놓는 빌런 ‘블랙 맘바’와 싸우며 데뷔 첫 해를 보냈다. 데뷔곡 ‘블랙 맘바’(2020)의 가사는 이 세계관의 집약이다.

거대 서사를 업고 뛰던 그룹은 SMCU의 창조자인 이수만 전 SM 총괄 프로듀서가 경영권 분쟁으로 갑작스럽게 퇴진 한 뒤 잠시 주춤했다. 광야를 떠나 ‘리얼 월드’인 지구로 내려와 선보인 곡 ‘스파이시’(2023)의 콘셉트는 이전까지와는 사뭇 다른 ‘하이틴 걸’이었다. 앨범 성적은 좋았지만 에스파만의 색깔이 약하다는 평도 나왔다. ‘스파이시’ 이후 발표한 ‘드라마’(2023)의 성적은 부진했다.

그룹 에스파가 ‘위플래시’ 뮤직비디오 촬영장에서 케이크를 들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룹 에스파가 ‘위플래시’ 뮤직비디오 촬영장에서 케이크를 들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에스파가 광야와 지구에서 헤매는 동안 코로나19 팬데믹은 끝났다. 음악 시장의 분위기도 바뀌었다. K팝 아이돌의 복잡한 세계관 마케팅에 대한 인기는 시들해졌다. 듣기 편한 팝송같은 곡들이 인기를 끌었다. 광야로 다시 돌아가든, 지구에 남든, 선택이 필요했던 에스파는 지난 5월 신곡 ‘수퍼노바’와 함께 ‘다중우주’ 라는 새로운 세계관을 공개했다. 모두가 세계관을 해체하는 시기에 오히려 세계관의 범위를 확장했지만, 기존 서사에 비해 내용은 오히려 단순해졌다. 다른 우주에 존재하는 다양한 나를 만난다는 설정이다. ‘수퍼노바’ ‘아마겟돈’ ‘위플래시’는 올해 상·하반기 음원 차트를 평정했다.

김도헌 대중음악 평론가는 “에스파의 인기는 거대서사의 해체와 떼놓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서사를 좀 가볍게 가져가고, 잘할 수 있는 음악에 집중하다보니 대중에게 더 잘 어필하고 있다. 요즘엔 세계관을 없애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지만, 사실 그런게 아예 없으면 또 재미가 없어진다. 에스파는 그 중간 지점을 잘 잡은 것 같다.” 데뷔 초부터 강하게 가져갔던 거대 서사를 완전히 버리지도, 그렇다고 광야만큼 세게 밀어붙이지도 않으면서 신곡의 느낌과 어울리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독자적 브랜드가 된 ‘쇠맛’

그룹 에스파의 멤버 지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룹 에스파의 멤버 지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넥스트 레벨’부터 올해 발표한 ‘수퍼노바’ ‘아마겟돈’ ‘위플래시’까지, 에스파 히트곡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일렉트로닉이다. 사운드 뿐 아니라 뮤직비디오에서도 기계적이고 날카로운 느낌을 공통적으로 가져가면서 ‘쇠맛’은 에스파라는 그룹 자체를 가리키는 단어가 됐다.

정민재 대중음악 평론가는 “중간중간 힙합 느낌이 있다고 해도 결국 에스파 노래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차갑고 강렬한 일렉트로닉 사운드”라며 “이것을 이렇게까지 전면에 내세우고, 데뷔 때부터 일관되게 가져온 팀은 에스파 밖에 없다”고 말했다.

에스파가 가장 최근 발표한 ‘위플래시’ 뮤직비디오에서는 ‘아마겟돈’과는 정반대의 콘셉트를 지향한 것도 흥미롭다. ‘위플래시’ 뮤비는 하얀 스튜디오에서 검은색 카메라, 조명기구 등 최소한의 소품들만을 사용해 촬영됐다. 멤버들이 ‘전자 쇠맛’이라고 홍보한 사운드도 ‘수퍼노바’ ‘아마겟돈’에 비해 단순하면서도 감각적이다. 정 평론가는 “‘아마겟돈’은 비주얼이나 사운드적으로 보여주려고 하는게 굉장히 많은 ‘맥시멀’한 곡인데, ‘위플래시’는 미니멀한 미학을 추구한다. 에스파는 두 가지 모두에서 매력을 발휘한 것 같다”고 말했다.

데뷔 초기 카리나, 윈터에 쏠려있던 대중의 관심이 닝닝, 지젤 등 타 멤버들에게도 확장되는 것도 인기 요인이다. 특히 지젤은 ‘위플래시’ 안무에서 가장 하이라이트가 되는 부분을 맡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모두 검은색 머리에 비슷한 의상을 입고 있는 와중에 혼자 핑크색 머리를 하고 있다. 지난주 마마 무대에서도 얼굴의 절반을 가리는 선글라스를 끼고 출연해 엄청난 환호를 이끌어냈다. 유튜브에는 지젤의 ‘위플래시 그 장면’ 만을 편집해 올려놓은 영상들도 계속 올라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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