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태 원인 ‘임도’ 아니라더니…산림청, 752곳 ‘위험’ 인지했다

글·사진 김현수 기자

경북 예천군 ‘산사태 발생’ 야산 가보니

지난 27일 경북 예천군 감천면 진평리의 한 야산 임도 모습. 이곳은 지난해 7월 발생한 진평리 산사태의 시작 지점이다.

지난 27일 경북 예천군 감천면 진평리의 한 야산 임도 모습. 이곳은 지난해 7월 발생한 진평리 산사태의 시작 지점이다.

녹색연합 “배수 체계 미비로 지반침하…폭설로 스키장 방불”
전국에 위험 노출 1925가구…당초 발뺌하다 ‘피해 우려’ 공문

“이 현장을 보세요. 이런데도 임도가 산사태의 원인이 아닙니까.”

지난 27일 경북 예천군 감천면 진평리 한 야산을 찾은 서재필 녹색연합 전문위원이 임도 아래 거대한 골짜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골짜기는 산림 관리와 산불 진화 등을 위해 산속에 낸 임도의 비탈면이 무너지면서 만들어졌다. 이날 내린 폭설로 골짜기는 마치 거대한 스키장처럼 보였다.

서 위원은 “이곳이 진평리 산사태의 최초 발생 지점”이라며 “비탈면이 터지면서 시작된 토사가 거대한 바위와 나무 등을 쓸고 내려와 마을을 덮쳤다”고 설명했다. 거대한 계곡으로 변해버린 이곳 아래에는 지난해 7월 발생한 산사태로 주민 2명이 목숨을 잃은 진평리 마을이 있었다.

임도가 산사태 원인이 아니라고 주장해온 산림청이 전국 752곳의 임도를 사실상 산사태 위험지역으로 구분해 관리해왔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녹색연합은 정부의 국가안전대진단 상세 정보를 통해 임도의 산사태 위험에 주민들이 노출돼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확인했다고 28일 밝혔다.

서 위원은 배수 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못해 빗물이 산 아래로 흐르지 못하면서 진평리 산사태가 발생했다고 했다. 그는 “인공적으로 만든 임도가 빗물을 모으는 ‘물받이’ 역할을 하면서 지반침하가 시작됐다”며 “산림청은 임도가 산사태 원인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여러 정황상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녹색연합은 매년 정부가 시행하는 국가안전대진단 상세 현황 중 ‘대한민국 안전진단 집중점검 임도유역 민가 현황(2023년 말 기준)’ 자료를 들어 산림청이 임도를 위험지역으로 관리해왔다고 주장한다. 이 자료를 보면 전국 752곳의 임도 3400㎞를 ‘집중안전점검 유역’으로 지정하고 있다. 산림청은 이 임도 아래 1925가구가 거주한다는 구체적인 수치도 파악하고 있다고 녹색연합은 덧붙였다.

서 위원은 “산림청은 자료에 나오는 임도 752곳 중 인명 및 재산 피해가 우려되는 곳을 중점 점검하라는 공문을 지난 4월 각 지자체로 보냈다”며 “임도로 인해 발생할 인명·재산 피해는 산사태 말곤 없다. 산림청 스스로 임도가 산사태 위험을 높인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산림청은 그간 임도가 산사태의 원인이 아니라고 밝혀왔다. 지난해 7월 충남 논산에서 2명이 숨진 사고에 대해서도 자체 조사를 통해 “임도 및 배수 체계가 양호했고 파괴나 구조 이상, 배수시설의 문제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반면 행정안전부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은 해당 사고를 ‘임도에서 발생한 불안정한 요인에 기인한 붕괴’로 결론지어 논란이 일었다.

박은정 녹색연합 자연생태팀장은 “산사태 예방을 위한 성토사면(흙을 쌓아서 만든 경사면)·절개지와 배수 체계 등이 관리되지 못하는 임도가 전국 곳곳에 널려 있다”며 “산림청은 인명피해와 직결되는 관리에는 인력과 예산 부족을 탓하며 손 놓고 있고 신설에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산림청은 매년 임도 신설 예산을 증액하고 있다. 임도 신설을 위해 최근 10년간 1조6897억원을 투입했다. 한 해 평균 1689억원을 투입한 셈이다.

반면 구조 개량에 집행된 예산은 같은 기간 2666억원이다. 한 해 평균 266억원으로, 임도 신설 예산의 15.8% 수준이다. 국내 총임도는 2만5000㎞에 달한다.

산림청은 집중점검지역은 산사태 위험지역과 다른 개념이라고 해명했다. 산림청 관계자는 “집중점검지역이란 임도 관리 시 우선으로 점검·관리해야 할 곳을 의미한다”며 “해당 자료에 나온 곳은 임도의 붕괴나 산사태 위험지역이 아니라 민가를 우선 보호해야 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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