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네 시, 놀이터의 풍경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말뚝박기, 망까기, 말타기, 놀다보면 하루는 너무나 짧아.” 건축 연도가 오래된 아파트 단지를 지나다가 놀이터를 발견하고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렸다.
어린 시절, 오후 네 시쯤이면 하교 후 숙제를 마친 아이들이 놀이터로 하나둘씩 모였다. 저녁밥을 먹기 전까지 아이들은 놀이터에 모여 신나게 놀았다. 놀이터에는 각자의 영역이 있었다. 여자애들은 주로 편을 갈라 고무줄놀이를 하고 남자애들은 납작한 돌을 세우고 돌을 던져 쓰러뜨리는 비사치기나 막대로 나무토막을 멀리 보내는 자치기를 하곤 했다. 남녀 구분 없이 술래잡기나 망줍기 같은 놀이를 하기도 했다. 삼삼오오 모여 구슬치기, 딱지치기를 하거나 체력이 좋은 아이들은 정글짐에 빨리 올라가기처럼 단순한 놀이를 하기도 했다. 각자 제일 친한 친구는 있었지만 팀을 나누는 놀이를 할 때는 자연스럽게 규칙에 따라 편을 갈랐다. 나이가 많은 아이들이 어린 동생들에게 놀이의 규칙을 알려주었고, 새로운 아이가 이사 오면 같이 놀면서 얼굴을 익히는 장소도 놀이터였다. 어른들이 정해둔 규칙이 아니라 어울리면서 만들어내는 아이들만의 규칙이 동네마다 자연스럽게 생기곤 했다.
아이들의 놀이에는 ‘깍두기’라는 존재가 있었다. 동네마다 깍두기의 의미는 달랐다. 어떤 동네는 놀이를 제일 잘해서 승패에 영향을 미치는 아이가 깍두기가 되어 각각 다른 편에 한 번씩 서주거나 못하는 편을 도와주었고, 어떤 동네에서는 놀이를 잘 못하는 아이를 깍두기로 삼아 기회를 더 주고는 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재미있게 오래 놀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평등의 법칙을 놀면서 체득한 셈이다. 어린 시절 놀이터는 ‘나’와 함께하는 ‘우리’를 배운 장소였다.
우연히 마주친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없었다. 미끄럼틀과 시소, 그네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이상하다, 하교시간일 텐데’라고 생각했지만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바쁘다. 공부를 위해 학원을 여러 개 다닌다. 요즘엔 줄넘기 학원이나 체육 학원을 다닌다고 한다. 어디에서나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법칙을 만들 것이고, 세월의 변화는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아쉬운 마음도 어쩔 수 없었다. 문득 여행을 하면서 마주친 놀이터의 모습이 떠올랐다. 재미있는 놀이를 하면서 오후 햇살을 만끽하는 아이들. ‘놀면서 배운다’는 말은 이제는 사라져가는 말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