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수산물이 맛난 철이다. 청어가 빠질쏘냐. 특유의 그 기름기와 달큰함 깃든 풍미는 이때가 아니면 누리기 어렵다. 샛노란 알 품은 알배기가 걸린다면 더 좋겠다. 명란뿐만이 아니라 청어알젓도 진미이다. 숭어 어란뿐 아니라 청어 어란도 못잖다. 씹기 좋도록 잔가시를 끊는, 청어회에 어울리는 칼질의 법수를 아는 숙수의 손을 타면 한층 맛난 청어회를 먹을 수 있다. 칼질된 가시는 귀찮은 놈이 아니다. 씹는 맛과 재미를 더하는 부록이다. 청어는 잘 말리면 또 다른 맛이 폭 들기도 한다. 서유구(1764~1845)의 <난호어목지>, 청어 항목을 보자.
“우리나라의 청어도 말려 자줏빛 도는 붉은빛 나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말리는 법은, 등을 가르지 않고 새끼에 엮어 볕에 말린다. 이렇게 하면 멀리 보내거나 오래 보관해도 상하지 않는다. 속칭 ‘관목’이라고 하는 것은 두 눈이 새끼줄로 꿸 수 있을 만큼 투명한 것을 말한다(俗呼貫目, 謂兩目透明, 如可繩貫也). 잡아 바로 배에서 말린 것이 품질이 좋다고 한다.”
예전에는 조기뿐만이 아니었다. 생선을 새끼에 엮어 통으로 말리면, 마르다 자연스레 구부정하니 익숙한 굴비 모양이 나면, 다 굴비였다. 그러다 ‘조기굴비’가 굴비를 대표하는 데 이르렀다. 이제 굴비 하면 조기, 조기 하면 굴비다. 하지만 조기굴비만큼이나 민어굴비며 청어굴비를 먹던 시절도 있었다.
관목이라는 말은 어떤가? 아 과메기! 하며 손뼉을 친 독자도 있으리라. 18세기 문서에서 ‘관목청어’ ‘청어관목’ 따위를 만나기란 어렵지 않다. 이는 굴비 방식이 아니라, 눈을 꿰어 말린 가공품일 테다. 다시 헤아린다. 사람은 주어진 자원을 먹을거리로 변용해 살아가는 존재이다. 청어가 많이 나면 청어굴비도 청어과메기도 흔히 먹는다. 하지만 자원의 증감에 따라 조기가 굴비를 다 덮을 수도 있고 꽁치가 과메기를 다 덮을 수도 있다. 그러다 민어굴비가 돌아올 수도 있고 청어과메기가 돌아올 수도 있다. 그 말과 유래가 어떻게 되든 오늘날 과메기의 대종은 꽁치과메기이며 눈을 꿰지 않는다.
이규경(1788~1856)이 <오주연문장전산고>의 ‘용어변증설’에 남긴 기록도 다시 보인다. 이규경은 “가난한 사람에게 청어가 없다면 어찌 나물반찬 신세를 면하랴” 하는 당시의 속담을 인용해 청어의 의의를 단박에 드러냈다. 그러면서 산지의 청어가 동지 전에 서울로 가려면 “연창(煙窓)에서 훈연해야 상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청어를 ‘연관목(煙貫目)’이라 부르며 비싼 값을 받는다”고 했다. ‘연관목’에는 “관목은 곧 말린 청어의 속명(貫目卽乾靑魚之俗名也)”이라고 주석했다. 그때에는 청어의 두 눈을 꿰어, 연창 곧 연기가 빠져나가는 창가 또는 그런 시설에 걸어 훈연하며 말리는 방식도 있었나 보다.
그렇지, 훈연 과메기가 안 될 건 또 뭐람! 청어 훈연이라면 또한 오늘날에도 네덜란드, 독일, 영국 북쪽 바닷가에서 면면한 일상 아닌가. 옛 문헌이 지구 반대편의 일상을 비춘다. 지구 반대편의 오늘이 한반도의 문헌을 되비춘다. 그 속에서도 청어가 헤엄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