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에 부러지고 쓰러진 나무들···눈에도, 나무에도 이유가 있었다

오동욱 기자    강한들 기자
28일 서울 성북구 성북동의 한 나무가 전신주를 향해 쓰러져 있다. 이 사고로 174가구가 정전 사태를 겪었다. 서울소방본부 제공 사진 크게보기

28일 서울 성북구 성북동의 한 나무가 전신주를 향해 쓰러져 있다. 이 사고로 174가구가 정전 사태를 겪었다. 서울소방본부 제공

적설량이 최대 40㎝가 넘는 기록적인 폭설이 내리면서 눈이 쌓인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무가 쓰러지는 사건·사고가 줄을 지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 일대가 정전 사고를 겪었고, 심하게는 인명피해까지 발생했다. 11월말까지 이어진 ‘포근한 겨울’로 나무들이 미처 잎을 떨구지 못한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찾아온 눈 폭탄이 곳곳에서 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가 심해지고 이상기후가 빈번할수록 이처럼 ‘예상할 수 없는 형태’의 사고가 늘 수 있다고 경고했다.

28일 오전 6시50분쯤 서울 마포구 공덕·염리·성산동 일대 아파트 단지와 빌라·상가에서 벌어진 대규모 정전은 ‘아파트 조경수’로 인해 빚어진 것이었다. 한 아파트의 조경수에 폭설이 쌓였고 이로 인해 휘어진 나무가 내려앉으며 전깃줄을 눌러 끊었다. 이날 오전 5시30분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서도 폭설로 나무가 전신주 쪽으로 쓰러져 174가구가 정전사태를 겪었다.

인명피해도 발생했다. 이날 경기 용인시의 한 단독주택에서는 60대 A씨가 집 앞에서 쌓인 눈을 치우다 머리 위로 눈이 쌓인 나무가 쓰러져 깔려 목숨을 잃었다. A씨는 심폐소생을 받으며 응급실로 이송됐지만 끝내 숨졌다.

이번 폭설 피해는 무거운 눈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습설’이라 불리는 이번 눈은 ‘건설(마른 눈)’에 비해 최대 3배까지 무겁다. 습설은 보통 서해상의 뜨거운 바닷물이 대기의 찬 공기와 만나 발생한 눈구름이 내륙으로 이동해 내리는 눈을 말한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눈이 나뭇가지에 쌓이면서 이를 버티지 못한 나무가 부러지고 휘거나 쓰러진다. 이날 아침부터 기온이 오르자 가로수에 쌓였던 눈덩이와 습설이 녹은 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지나가는 시민들을 ‘덮치는’ 소동이 곳곳에서 벌어지기도 했다.

28일 오전 7시 정전사태가 발생한 서울 마포구 공덕동 인근의 조경수 모습. 나뭇잎에 눈이 쌓여있다. 오동욱 기자 사진 크게보기

28일 오전 7시 정전사태가 발생한 서울 마포구 공덕동 인근의 조경수 모습. 나뭇잎에 눈이 쌓여있다. 오동욱 기자

무거운 것뿐만이 아니다. 습설은 나무에 붙는 힘도 강하다. 붙는 힘이 약한 눈은 나무가 부러지거나 쓰러질 때 가루처럼 흩어지지만, 흡착력이 강한 눈은 떨어지는 나무에 붙어 무게와 속력을 더한다. 오충현 동국대학교 바이오환경학과 교수는 “습설은 (나무에서) 잘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급격한 기온 하강으로 나무가 잎을 떨굴 준비를 하지 못한 것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올해 여름을 넘어선 긴 더위로 인해 단풍이 드는 것이 늦었고, 따뜻한 겨울이 이어지며 나무에 잎이 많이 남아있었다. 그만큼 눈이 내려앉을 면적이 컸다. 기온이 서서히, 충분히 내려가는 과정에서 나무는 잎을 떨어트릴 준비를 하지만 올해처럼 긴 여름 이후 급격하게 기온이 떨어지면 잎은 비교적 오래 나무에 붙어있게 된다.

변준기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실장은 “올해는 날씨 영향으로 단풍도,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도 전체적으로 늦어졌다”며 “나뭇잎이 있으면 (눈이) 쌓일 공간이 많아져 (나무 쓰러짐의) 한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28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정전 사태를 일으킨 나무의 가지들이 잘린 채 길 한편에 놓여있다. 오동욱 기자 사진 크게보기

28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정전 사태를 일으킨 나무의 가지들이 잘린 채 길 한편에 놓여있다. 오동욱 기자

일부 전문가는 과도한 가지치기로 빚어진 나무의 불균형한 생장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시민 안전이나 조경을 목적으로 나뭇가지를 과하게 자르면 나무는 살아남으려고 잎을 무성하게 피우고 가지 또는 줄기에 속병이 들어 쉽게 쓰러진다는 것이다.

최진우 서울환경연합 전문위원은 “안전을 위해 가지를 과하게 자르면 오히려 원줄기와 가지의 부착면이 약해지는 현상을 ‘강전정(굵은 가지를 한 번에 자르는 것)의 역설’이라고 부른다”라며 “변화무쌍한 기후재난 속에서 녹지와 안전을 동시에 챙기려면 (나무가) 어린 시기부터 구조적으로 잘 견딜 수 있게끔 관리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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