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 벤츠 전기차 화재 “원인 불명” 결론…찜찜한 불씨 남았다

박준철·권재현 기자

경찰 “배터리관리장치 영구 손상”…관리소장 등 4명 송치

피해 주민 “벤츠에 면책권” 반발…벤츠 “합당한 책임질 것”

지난 8월 발생한 배터리 화재로 뼈대만 남은 벤츠 전기차. 연합뉴스

지난 8월 발생한 배터리 화재로 뼈대만 남은 벤츠 전기차. 연합뉴스

경찰이 지난 8월 인천 서구 청라국제도시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메르세데스 벤츠 전기차 화재에 대해 “원인 불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피해 입주민들은 “벤츠에 면책권을 준 것과 다름없다”고 반발하고 있어 향후 피해보상 문제 등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인천경찰청 형사기동대는 28일 “화재 원인을 밝히기 위해 압수수색과 합동감식, 전문가 자문 등 광범위한 수사를 진행했지만 정확한 화재 원인은 파악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경찰 조사를 보면 불이 난 배터리는 중국에서 제조한 배터리 셀을 공급받아 벤츠가 자체 기술로 배터리 팩을 만들어 차량에 장착한 제품이다. 차량 출고·인도 시 외부 충격과 리콜 이력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화재 당시 배터리 상태를 확인하려면 ‘배터리관리장치’(BMS)의 기록을 살펴봐야 하는데 화재로 BMS가 영구적 손상을 입었다”며 “데이터를 추출할 수 없어 정확한 화재 원인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다만 ‘외부 충격에 의한 발화’ 가능성은 있다는 입장이다. 경찰은 “BMS와 배터리 팩을 수거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에 자문한 결과 ‘외부 충격에 의한 배터리 셀 손상으로 발화됐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2017년부터 국내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 88건을 분석했지만 대부분 교통사고 후 불이 난 사례”라며 “주차된 상태에서 저절로 전기차에서 화재가 난 것은 이번이 첫 사례”라고 덧붙였다.

화재 원인은 밝히지 못했지만, 화재를 제때 감지해 막지 못한 책임은 물을 계획이다. 경찰은 화재가 발생한 아파트 관리소장 A씨와 소방안전관리 책임자 B씨 등 4명을 과실치상 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A씨 등은 화재 발생 신호를 보고도 직접 현장 확인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스프링클러 등 소방시설 작동을 정지시켜 화재를 확산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아파트 내 화재경보기와 스프링클러 등 주요 소방시설 작동에는 문제가 없었다”며 “A씨 등이 평소 화재 발생 시 대응 교육이나 훈련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피해 아파트 입주민들은 수사 결과에 대해 “경찰이 벤츠에 면책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반발했다.

당시 화재로 해당 아파트 주민 등 23명이 연기를 마셔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지하 주차장에 있던 차량 87대가 불에 타고 783대가 그을었다. 아파트 14개동 1581가구에 수돗물 공급이 끊겼고, 5개동 480가구는 단전돼 승강기 운행도 못하는 등 입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주민들은 “화재 발생 4개월이 됐지만 아직 아파트 3개동 400여가구는 난방과 온수가 안 되는 등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운곤 청라 아파트 피해대책위원장은 “경찰은 정확한 화재 원인을 못 밝히는 것일 뿐, 벤츠에 책임이 없다고 한 것은 아니다”라며 “벤츠가 피해 주민들에게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보상하지 않으면, 벤츠코리아는 물론 독일 벤츠 본사도 항의 방문할 것”이라고 말했다.

벤츠코리아 관계자는 “주민들의 고통을 깊이 인식하고 있으며, 피해 분석이 완료되는 대로 가능한 한 신속하게 합당한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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