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1면이 그날 신문사의 얼굴이라면, 1면에 게재된 사진은 가장 먼저 바라보게 되는 눈동자가 아닐까요. 1면 사진은 경향신문 기자들과 국내외 통신사 기자들이 취재한 하루 치 사진 대략 3000~4000장 중에 선택된 ‘단 한 장’의 사진입니다. 지난 한 주(월~금)의 1면 사진을 모았습니다.
■11월 25일
한·일 정부 참석하에 열릴 예정이던 일본 사도광산 추도식이 ‘반쪽’행사로 진행됐습니다. 정부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력이 있는 일본 정부 대표 참석에 항의해 전날 불참을 선언했지요. 한국인 노역의 강제성이 삭제된 채 일본만의 추도식 열린 겁니다. 애초 일본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에 정부가 동의해줄 때부터 예고된 일입니다. 대부분의 일간지들이 한국 정부 관계자와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들이 불참해 행사장의 절반이 비어 있는 사진을 1면에 게재했습니다. 가만보니 관련 기사에 붙은 굵은 글씨의 제목이 매체마다 다른 뉘앙스를 풍깁니다. 우리 정부의 ‘외교무능’이나 그 무능함으로 인한 예고된 ‘참사’라 쓴 매체가 있는가 하면, ‘뒤통수’를 맞았다며 일 정부의 탓으로 돌리는 듯한 제목을 쓴 매체들도 있네요. 같은 사진을 쓰고 서로 다른 해석을 하도록 합니다. 사진이 증거하는 사실을 두고 각자 다른 진실을 추구하고 있는 겁니다.
■11월 26일
‘위증교사’ 1심 선고를 받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진은 적어도 열흘 전부터 1면을 예약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15일 이 대표는 ‘공직선거법’ 1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인 징역형을 선고받았지요. 위증교사 선고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법원 앞은 일찌감치 긴장된 분위기였습니다. 현장에는 ‘무죄’와 ‘구속’을 외치는 이들의 목소리가 엉겼습니다.
이 대표의 선고 후 표정이 1면 사진이 될 터였습니다. ‘위증교사 1심 무죄’ 속보로 떴고, 머릿속엔 ‘무죄=웃음’이라는 등식이 그려졌습니다. 활짝 웃어만 준다면 그 표정만으로 1면이지요. 하지만 이 대표는 법정을 나서는 동안 웃지 않았습니다. 들어갈 때 웃던 그는 나올 땐 입술을 굳게 다물었습니다. 정치인의 표정은 메시지지요. 웃어도 될 때라고 다들 생각할 때 ‘웃지 않는 결심’을 하는 이들이 정치인입니다.
■11월 27일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세 번째로 국회를 통과한 ‘김건희 여사 특검법’에 다시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대통령과 여사의 공천개입 의혹이 확산하고 국민의 의구심이 커지고 있는 중에도 특검 거부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하도 자주 봐서 눈에 익어버린 사진은 뉴스가 커도 1면 사진으로 내놓기가 망설여집니다. 올 한해 지면에 게재한 기자회견 사진의 통계를 낸다면 아마도 ‘김 여사 특검법’과 관련된 사진들이 가장 빈도가 높지 않을까 짐작합니다.
식상해보이는 사진이지만 대체할 만한 사진이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민주당 의원들이 대통령실 앞에서 대통령의 거부권을 규탄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의원들 머리 위로 거뭇한 먹구름이 드리웠습니다. 정국에 드리운 먹구름이자, 국민 가슴을 짓누르는 먹구름입니다.
■11월 28일
눈이 내렸습니다. 눈에도 성격이 있습니다. 눈 내리는 날에 사진기자는 이 눈의 성격을 파악하면서 발품을 팝니다. ‘첫눈’이 내렸습니다. 그런데 그게 폭설이었습니다. 근대적인 기상 관측 이래 11월 기준 117년 만에 최대 적설을 기록했습니다. 대개 기상청이 첫눈이 왔다고 발표해도 육안으로 관측이 안 된 경우가 많습니다. 이날 눈이 적당히만 왔다면 낭만적인 ‘설국’ 사진들이 지면을 다퉜을 겁니다. 하지만 사건이자 사고인 ‘폭설’은 불편과 피해에 초점을 맞춰야 하지요.
그래도 첫눈이라고 설레는 이들이 많습니다. “첫눈”이라고 발음하면 아련한 그리움이 이는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카메라를 들고 눈을 좇는 사진기자에게 첫눈이란 그저 일일 뿐이지요. ㅠㅠ
■11월 29일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휴전으로 귀향하는 레바논 피란민 사진을 1면에 쓰기로 했습니다. 회의 이후에 속보가 떴습니다. 그룹 뉴진스의 긴급 기자회견이 열린다는 내용이었지요. 밤 8시 반에 회견이 시작되자, 뉴스전문 채널들은 일제히 생중계를 했습니다. 멤버들의 ‘전속계약 해지’와 관련한 발언 한마디 한마디는 바로 속보 자막을 달았고요. 경향신문도 기사와 사진이 올라오자마자, 즉시 온라인 톱자리에 배치했습니다. 관련 부서 야근자들은 평소보다 분주했습니다. 뉴진스 기자회견의 사진과 기사는 지면 11면(사회면)에 자리를 잡았지요.
퇴근길 지하철에서 뉴진스의 사진을 1면에 쓸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연예뉴스는 웬만해선 1면에 쓰지 않는다는 오랜 경험때문인가 싶기도 했습니다. 밤에 급히 잡힌 회견이 생중계가 되고 매체들이 다투어 온라인 속보를 쏟아낼 만큼 대중의 관심이 쏠리는 뉴스인데 왜 신문은 1면을 내주지 않는 걸까. 뉴진스 기자회견 사진이 기존 1면 외신사진을 밀어내고 편집된 지면을 머릿속에서 굴려봅니다. 이상한가?
‘왜 뉴진스는 1면 사진이 될 수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