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한 상태라고는 하지만,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휴전이 발효된 참에 한 번쯤 구경해볼 만한 사진전이 개막해 소식을 전한다. 서울 삼청동 뮤지엄한미에서 열리는 <시대의 아이콘: 아놀드 뉴먼과 매거진, 1938-2000> 기획전이다. 피카소, 앤디 워홀 등 세계적인 예술가의 초상이 주류를 이룬 전시이지만, 정치인들을 모아 놓은 챕터에서는 그동안 보도사진에서 보던 이미지와는 다른 세계 수장들의 초상을 만나보게 된다. 최봉림 뮤지엄한미 부관장은 이 사진들을 보며 지금의 세계 정세에 대한 생각에 잠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했다.
사진미술관의 하얀 방들을 거쳐 회랑 같이 긴 전시 공간에 들어서면 존 F. 케네디를 비롯한 세계 지도자들의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이 중 아놀드 뉴먼의 스타일과 다른 초상이 2점 등장하는데, 그 주인공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장인 야세르 아라파트와 이스라엘 총리였던 이츠하크 라빈의 초상이다. 사진은 극단적으로 크로핑됐고,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은 크기로 나란히 벽에 걸렸다. 잡지사 ‘라이프’의 의뢰를 받고 촬영한 작품이다.
반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갈등을 빚었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1993년 오슬로협정을 통해 평화와 공존을 모색하는 문을 열었다. 협정은 팔레스타인 자치와 이스라엘의 공존에 대한 합의였다. 협상의 주역이었던 아라파트 수반과 라빈 총리는 1994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러나 1년 후 라빈 총리는 이스라엘 극우파에게 암살됐다. 이후 집권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팔레스타인 점령지 반환을 거부했고, 1996년 하마스의 자살폭탄테러가 이어지는 등 오슬로협정은 이행되기에 어려웠다. 아라파트 수반이 2004년에 세상을 떠난 지금, 이스라엘과 달리 팔레스타인을 대표할 만한 수장이 없기에 누군가가 찍었을 네타냐후의 초상 사진과 나란히 걸릴 팔레스타인 지도자 사진은 현재 없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 같다.
회랑 초입에 걸린 사진은 잡지 ‘LOOK’에 실린 존 F. 케네디의 초상이다. 역시나 프레임에 꽉 찬 사진이지만, 그 옆에 걸린 사진은 인물보다는 배경이 부각되어 사진에 찍혔다. 이런 수법이 바로 아놀드 뉴먼의 전매특허다. 물론, 인물 사진을 찍은 많은 사진가가 피사체가 되는 인물과 관련된 무언가를 사진 안에 포함시키지만, 아놀드 뉴먼처럼 파격적인 구성을 시도한 사례는 드물다. 연속으로 이어지는 존 F. 케네디의 사진은 인물보다는 그가 있는 장소를 듬뿍 담아내는데, 정치란 어느 특정된 우상화된 인물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소통의 공간을 이용할 줄 아는 전략가라는 인상을 주게 한다. 그 옆에 걸린 사진을 보면 그러한 추측에 신빙성을 더해주는데, 케네디는 문턱에 기대 밖으로 나오지 않고 다른 정치인들이 포치에 포진되어 담소를 나누고 있다. 한발 물러서서 지켜보는 것이 존 F. 케네디의 정치 스타일이라고 아놀드 뉴먼은 생각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