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엉망진창 최악의 필리핀 여행
지진 여파로 붕괴된 클라크국제공항, 리조트는 환불 불가…돈 아까워 울며 겨자먹기 출발
껄렁대는 가이드·툭하면 바뀐 일정에 여행 내내 실소가 터졌다, 그래도 이 정도면 해피엔딩 아닌가
24시간 후 내가 도착할 공항이 사라져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모든 사고가 멈췄다. 당혹스러운 마음을 추스르며 부랴부랴 항공사에 연락을 취했다. 상담원은 보상 따위는 없으며 항공료만 전액 환불 조치될 거라 통보하고 멋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때라도 나는 이 여행을 멈췄어야 했다.
필리핀 클라크국제공항은 지진의 여파로 건물이 붕괴되고 기능이 정지됐다. 리조트에 전화를 걸어 환불을 요구했지만 리조트 상담원은 공항만 지진 피해를 입었을 뿐, 리조트 시설은 아무 이상 없이 정상 영업 중이므로 환불은 불가능하다 말했다. 항의하자 그는 마닐라공항은 운영되니 그곳으로 입국하면 픽업 차량을 보내주겠다는 합의안을 내놨다. 물론 비용은 별도 청구였다. 클라크에서 마닐라까지는 자동차로 3시간 거리였다. 일행들과 상의해보았다. 이대로 여행을 포기하면 수백만원을 날려야 했다. 클라크에 가자고 한 나는 죄인이 되어 고개를 조아렸고, 결국 마닐라행 비행기표를 급하게 예약했다. 저가항공임에도 취소된 항공권의 3배 가격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마닐라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직원에게 안내를 받아 짐을 찾고 마중 나온 리조트 직원을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였다. 목소리부터 껄렁거리는 남자가 다가와 내 이름을 불렀다.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이 여행은 망했구나’ 싶었다. 그는 인사도 없이 무어라 던지듯 말하고 혼자 걸어가버렸다. 우리가 멀뚱멀뚱 두 눈만 껌뻑대고 있자 저만치 걸어가던 그가 돌아서서 우리를 소리쳐 불렀다.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화가 났는지 쿵쿵대며 돌아와 왜 따라오지 않느냐고 쏘아붙였다. 나는 우리가 시각장애인인 걸 전해 듣지 못했냐고 물었다. “몽땅 다 장애인이에요?”라는 그의 물음에 내가 끄덕였다. 긴 한숨이 그에게서 한 번, 우리에게서 한 번 번갈아 쏟아졌다. 이렇게 시간만 보내서는 결론이 날 것 같지 않아 그에게 짐을 싣고 이동할 카트를 하나 가져오라 명령했다. 그가 느릿느릿 카트를 찾으러 간 사이 나는 또다시 친구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친구들은 이번 여행에서 미안하다는 말은 금지어로 하자 말해주었다.
승합차 한 대가 우리 앞에 정차했다. 가이드는 알아서 타라는 듯 뒷좌석 문을 열어놓고는 카트를 끌고 트렁크로 직행했다. 내가 더듬더듬 앞장서 차 문을 찾아 일행들을 안내했다. 차는 얼마나 오래됐는지 시트가 엉덩이 모양으로 파여 있었다. 승차감도 최악이었다. 소달구지를 타도 이보다 편할 것 같았다. 차를 타고 1시간쯤 지났을 때 휴게소 주차장에 차가 멈춰 섰고, 역시나 가이드는 저 혼자 성큼성큼 걸어가버렸다. 큰 소리로 그에게 우리를 화장실 문 앞까지 데려다달라고 요청하자 그는 우리를 짐짝처럼 끌어다 화장실 앞에 내팽개쳤다. 기분도 컨디션도 최악이 되자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그건 내 성격이었다. 나는 자포자기의 순간에 웃음이 헤퍼진다. 친구들을 이끌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우리 행색을 보고 내 팔을 부축해준 것은 다름 아닌 청소 담당 아주머니였다. 그는 우리를 빈칸으로 들여보낸 뒤 기다렸다가 세면대로도 안내해주었다.
고물차가 다시금 목적지를 향해 속도를 냈다. 가이드는 내게 왜 하필 클라크였냐고 물었다. “클라크는 3G로 유명한 곳이에요. 골프, 걸, 갬블. 이 중 당신들이 즐길 게 하나라도 있나요? 나 참, 여길 왜 왔나 이해가 안 돼 묻습니다. 사흘간 뭐 하실 건데요?”
친구들은 내 제안을 따랐을 뿐이니 대답해야 하는 사람은 나였다. 나는 ‘유흥의 끝판왕’인 곳에 가보고 싶었다. 온갖 향락과 쾌락의 온상이라는 곳을 피부로 느껴보고 싶었다. 하지만 절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할 그에게 저렴한 항공권 핑계를 대고는, 내가 짜온 일정을 이야기했다. 브리핑이 끝나자 그가 득달같이 어깃장을 놓았다.
“앙헬레스는 여자들이 왜 가는데요? 유흥가라는 거 압니까? 물놀이도 안 할 거면 수비크는 왜 가는데요? 우와! 환장하겠네.”
끊임없이 투덜거리던 그는 ‘그렇다면 가이드를 바꾸겠다’는 엄포에 그제야 입을 꾹 다물었다. 자동차 안은 냉랭한 침묵만 들어찼다. 운전기사는 눈치가 없는 것인지, 아님 무척이나 심심했는지 가이드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더듬더듬 그의 영어를 주워들었다. 그는 자신의 젊은 아내를 자랑했다. 스물다섯 살 차이가 난다 말하자 가이드가 뻐기듯 자기 여자친구는 이제 열아홉 살이라고 말했다. 기사는 불한당처럼 휘파람을 불며 “필리핀 스타일!” 하고 부러워했다. 이제는 정말 웃음이 터졌다. 그들이 아닌 이 여행을 강행한 나를 향한 조소였다. 하늘이 무언가를 뜯어말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리조트에 도착해서 나는 또 한 번 소리 내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예약한 숙소는 분명 방이 4개나 되는 널찍한 풀빌라였지만, 홈페이지에서 그토록 강조하던 프라이빗 수영장은 겨우 욕조만 했다. 수영은커녕 튜브 하나 띄우면 꽉 찰 정도로 협소했다. 일행 모두가 짐도 풀지 않고 거실 소파에 누워버렸다. 순간 바닥이 달달 진동했다. 여진이었다. 내 웃음에 전염됐는지 모두가 바람 빠지듯 일제히 웃어댔다. 우리 몸도 여진에 휩쓸리듯 산발적으로 경련했다. 어찌나 낄낄거렸는지 눈가에 눈물이 맺힐 지경이었다.
예상대로 여행은 엉망이었다. 내가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앙헬레스는 치안 문제 때문에 데려갈 수 없다고 거절당했고, 해안가인 수비크에서 노을을 오랫동안 보고 싶었으나 가이드가 곧 차 막힐 시간이라며 다그쳐 얼마 머물지도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툴툴대는 가이드가 꼴도 보기 싫었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팁을 챙겨주었고, 다음날 그는 약속보다 2시간 넘겨 출근했다. 내가 준 돈으로 밤새 술을 마셨다던 그는 결국 우리 앞에서 전날 먹었던 걸 몽땅 풀숲에 게워냈다. 생수로 입을 헹구고 다가온 그가 2시간만 쉬게 해달라고, 그럼 가자는 데는 다 가겠다며 간곡히 애원했다. 나는 그를 본떠 한 번 투덜대고는 대신 저녁에 라이브펍에 갈 것을 통보했다.
약속된 시간이 되자 숙소 앞에 승합차가 도착했다. 가이드는 눈치를 살피며 내가 가고 싶다던 라이브펍을 알아보니 좌석이 좁고 테이블 수도 적어 사람이 몰리면 입장까지 긴 시간을 대기해야 할지 모른다며, 자기가 더 유명하고 분위기가 좋은 펍을 알고 있으니 그리 가자 설득했다. 나는 음악만 들을 수 있다면 어디든 상관없었다. 다만 그가 데려간 곳은 공연이 없는 평범한 식당이었다. 가이드는 음식만 시켜주고 어디론가 사라진 후였다. 음식은 화가 날 정도로 비쌌고 맛이 없었다. 또 속았군. 야외나 다름없는 개방된 테라스에 앉아 해탈한 표정으로 맥주를 마셨다. 근처에 라이브펍이 있긴 했는지 음악 소리가 도로 건너 아련히 들려왔다.
이번 여행은 마지막까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마닐라공항에서는 특이하게도 공항 입구에서 신분 검사를 했다. 가이드는 검사관에게 돈을 조금 주면 줄 서지 않고 먼저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기다려도 상관없었지만 그가 보채는 바람에 돈을 내고 빠른 줄로 옮겼다. 그때 공항 직원으로 보이는 남성들이 다가와 일행의 짐을 받아 갔다. 장애인을 위한 공항서비스라고 생각해 따로 제지하지 않았고, 그들은 항공사 카운터까지 우리와 함께 이동했다. 표를 받고 짐을 부친 후 그들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더니 그들이 배달값을 내놓으라며 길을 막았다. 순식간에 돈과 영혼을 털리고 비행기를 탔다. 지독했던 가이드와의 안녕이었다.
하지만 불운은 계속됐다. 우리 좌석 앞뒤로 어린아이들이 40명 넘게 착석했다. 이륙 전부터 기내는 운동장을 방불케 했다. 한창때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5시간은 지옥과도 같았고, 나는 당연히 한숨도 자지 못했다. 옆좌석 친구에게 눈을 붙이긴 했냐고 물었다. 그 친구는 비행기를 두려워해 비행 때마다 항상 신경안정제와 수면유도제를 먹고 잠을 잤다. 그가 넋 나간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들이 수면제를 이겼어.”
그 말을 듣자마자 진심으로 소리 내 하하 웃었다. 객관적으로는 실패한 여행이었지만, 모순적으로 웃음이 끊이질 않는 며칠이었다. 이 정도면 어쨌든 해피엔딩 아닌가?
시각장애인 에세이스트. 열다섯 살 때부터 서서히 시력을 잃었다. 손끝으로 만나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 에세이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