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11월3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분신한 노동자 전태일이 평화시장의 참혹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먼저 한 일은 실태조사였다. 평화시장 노동자 126명에게서 받은 설문지를 토대로 이 시장 2만여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과 건강 실태를 고발했다. 126명 중 96명(77%)이 폐결핵 등 기관지 계통 질병을, 102명(81%)이 신경성 위장병을 앓았다. 이런 사실이 그때 경향신문 사회면에 보도돼 커다란 사회적 파문이 일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은 실태조사가 무엇보다 강력한 고발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업턴 싱클레어는 1906년 발표한 소설 <정글>에서 미 시카고 지역 육가공업체들의 비위생적인 작업 환경을 생생하게 폭로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지시로 정부가 실태를 조사한 결과 현실은 더욱 심각했고, 이를 계기로 순수식품 및 의약품법과 육류검사법이 만들어졌다. 정확한 실태조사야말로 현실을 바꾸고 바로잡는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실태조사를 한다는 것 자체에 이미 무언가를 개선하려는 결의가 담겨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태조사의 기본적인 도구는 통계이다. 사회적 약자를 판별하는 쉬운 방법이 있다. 통계 대상에서 제외된 집단이 곧 사회적 약자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 집단이 처한 상황을 드러내 바꾸려는 문제의식이 부재하고, 사회적 의지도 박약하다는 뜻이다. 노동권 확대의 역사가 비정규직·플랫폼노동 등의 통계 작성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통계에서 제외됐다는 건 사회적 존재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 자체가 시민권·노동권의 부재 증명이나 다름없다. 이주노동자 관련 통계의 미비가 대표적인 예다.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최근 인권위 의뢰를 받아 수행한 ‘이주노동자 사망에 대한 원인 분석 및 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연구’ 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국내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주노동자 3340명 중 2267명은 행정시스템에 최소한의 사망 정보도 없다. 매년 2000명 이상의 이주노동자는 누가, 언제 왜,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파악조차 되지 않는 것이다. 이 죽음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되 사회적으로 지워진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