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도 할래요”…자리 잡는 ‘노인 일자리’

최서은 기자

여행 가이드 등 전국 103만개

참여자 “사회 보탬 되고 싶어”

대부분이 약 1년 단기 계약직

예산 있어야 사업 지속 가능

유태진씨(62)는 매일 아침 멸종위기 식물의 안부를 챙긴다. 일터는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오조리 해안가에 있다. 그가 돌보는 식물은 모두 12종. 종자를 채집하고, 꽃과 열매를 살피고, 해충 피해를 들여다보는 일 모두 유씨 몫이다.

유씨가 글과 사진으로 남긴 기록들은 삼림 연구에 쓰인다. 발로 뛰어 만든 데이터를 연구소에 넘기면 연구원은 데이터를 토대로 효율적인 방제 방법 등을 찾아낸다. 유씨의 일자리는 정부가 산림자원 보존사업 일환으로 제공한 노인 일자리다. 급여는 많지 않지만 얻는 게 적지 않다. 유씨는 “아침에 규칙적으로 출근해 맑은 공기를 마시며 일하니 힐링도 되고 보람도 있다”고 말했다.

제주시 제주에너지공사 CFI 에너지미래관에서 만난 도슨트 박길승씨(75)도 ‘일하는 즐거움’에 빠져 있다. 박씨도 정부 노인 일자리 사업을 통해 6개월 전 처음 이 일을 하게 됐다. 도슨트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관람객에게 전시물에 대해 설명하는 안내인을 뜻한다. 그는 에너지미래관을 방문한 관람객을 대상으로 제주의 신재생에너지 관련 전시에 대해 설명·홍보하는 일을 한다.

박씨는 은퇴 전 대학교수로 활동할 때보다 훨씬 만족도가 높다고 했다. 전공인 군사전략과는 다른 분야이지만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일이 좋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새로운 일을 배우고 알아가는 과정이 즐겁다고 했다. 도슨트 일을 하려고 책 40~50권을 읽으며 공부했다.

올해 노인 일자리에 참여한 이들은 내년에도 일하기를 희망한다. 현재 대부분의 노인 일자리는 약 1년 단기 계약직이다. 사업 유지를 위해선 관련 예산 확보가 필요하다.

올해는 전국에서 약 103만개의 노인 일자리 사업이 진행 중이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지자체, 시니어클럽, 노인복지기관 등이 협력해 일자리 사업을 운영한다. 홀로 병원을 찾기 어려운 노인과 함께 병원을 방문하는 병원동행매니저, 자살 고위험군을 발굴하는 시니어생명지킴이, 지역 여행사 가이드 등 노인 일자리 종류도 전보다 다양해졌다. 은퇴 전 하던 일의 경험을 살리는 노인도 있지만, 아예 새로운 업종에서 일을 시작하는 노인도 적지 않다.

20년간 간호사로 일하다 제주에서 시니어생명지킴이 활동을 하는 정희자씨(69)는 “아직 건강한데, 집에서 무료하게 지내는 건 시간 낭비라고 느꼈다”며 “조금이나마 지역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어 일하게 됐다”고 말했다.

여행사 가이드 활동을 하는 강경민씨(68)도 한국공항공사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일자리를 찾았다. 병원동행매니저로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는 한희숙씨(62)는 제주에서 홀로 사는 위급한 노인을 긴박하게 병원에 모시고 가 고비를 넘길 수 있게 한 경험을 이야기하며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부는 내년도 노인 일자리 사업을 올해보다 확대한다. 일자리 수는 올해보다 6만여개 증가한 109만8000개로 2~27일 모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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