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달 동안 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HIV) 감염인 당사자이자 동료 감염인의 돌봄 지원을 받는 이들을 만나 그동안 살아온 삶과 돌봄 경험이 남긴 의미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HIV 감염인 파트너가 지병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이후 원가족의 시신 인도 포기로 인해 장례 지원을 도왔던 이의 집엔 여전히 그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었다. 시각장애와 편마비로 요양병원과 꽃동네를 전전하며 생활했던 이는 동료 감염인의 도움을 받아 병원과 심리상담을 받으러 다니고 있었다. HIV 감염 사실이 외부에 알려져 꿈도 포기하고, 공황장애로 사람들 만나는 것도 어려움을 겪고 있던 40대 감염인은 최근 장례지도사에 합격해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이들 모두 말벗이 되어주고 반찬을 나눔하고, 병원을 동행하는 돌봄 활동에 고마움을 아끼지 않고 표현해 주었다.
대부분 거주하는 곳에 찾아갔지만, 집 앞 커피숍에서 만나기도 했는데, 시끌벅적하게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질병명만 나오면 주위 사람들이 들을까 싶어 목소리를 낮추거나 ‘이쪽’이라고 표현하며 감추기 바빴다. 공포와 죽음의 질병이라는 오랜 편견을 온몸으로 견뎌온 이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낙인은 죽음보다 더 가혹하게 고립된 삶을 선택하도록 했고, 몸과 마음이 아픈 상황에서도 ‘HIV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못하게 만들었다. HIV 감염의 영향은 개인의 삶을 완전히 뒤바꿀 정도로 심각했지만, 돌봄은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게 닿지 못했다.
이런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소하고자 감염인 돌봄 사업이 2022년 시작되었다. 현재 연 50여명이 500회가 넘는 돌봄 지원을 받고 있지만, 2024년을 끝으로 시범사업이 종료된다.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의료 차별 문제와 질병에 대한 혐오가 굳건한 상황에서 돌봄이 필요한 이들을 발굴하고자 했고, 요양병원 등을 나와서도 동료 감염인의 지원을 받으며 지역에서 함께 살아보고자 한 것이 이 사업이 궁극적으로 원했던 목표였다. 정부 정책의 공백을 마냥 기다릴 수 없어 감염인 자조 모임이 직접 시작했는데, 여전히 많은 감염인이 자기 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12월1일은 세계 에이즈의날이다. 벌써 37회째를 맞는다. 그사이 하루 한 알의 약으로 치료할 수 있을 정도로 혁신적인 의학 발전이 있어 왔다. 하지만 돌봄이 필요할 정도로 여전히 아프고, 고립되어 살아가는 감염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예방’ 중심의 에이즈 관리 정책을 추진하는 한국 사회에선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 질병관리청이 2024년 발표한 제2차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관리 대책에는 ‘HIV 감염인 요양·돌봄 지원 확대’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동료 감염인의 참여는 여전히 보장되어 있지 않다. 돌봄 공백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정부가 더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