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보다 빠른 전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내년 1월 취임 첫날 멕시코·캐나다·중국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한다. 중국에 대한 추가 관세는 어느 정도 예상됐지만 미국의 전통적인 우호국으로 현재 무관세가 적용되는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해서도 관세를 꺼내들면서 해당국들은 대응책 마련에 비상이 걸렸다. 반도체 지원법상 보조금 지급을 전면 재검토할 수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당장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 정부로부터 받기로 돼 있던 보조금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라 전기차에 지원되는 세액공제 폐지 가능성도 거론된다. 현실화할 경우 미국 투자를 늘려온 현대차나 배터리 기업들의 타격이 불가피하다.
차기 트럼프 내각의 무역대표부(USTR) 대표, 재무장관, 상무장관 등 경제부처 요직에는 강경파들이 줄줄이 앉을 예정이다. 이들은 “모든 무역협정은 미국인의 필요에 맞게 재단돼야” 하고, “미국 가정과 기업을 위해 관세의 힘을 사용하길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에게 동맹이나 우호관계는 중요치 않다. 관세 폭탄의 다음 타깃이 한국이나 일본이 될 수도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요구하지 말란 법도 없다.
트럼프 정부는 경제와 비경제 이슈를 나누지도 않는다. 캐나다와 멕시코에 관세를 매기겠다는 이유가 마약 유입과 불법 이민 문제다. 이는 트럼프 정부가 분야를 막론하고 관세를 상대국 압박용으로 활용할 것임을 예고한다. 주한미군 주둔 비용인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위한 압박 수단으로 관세를 꺼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쇼크에 한국 경제는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2022년 코로나19 등 대형 악재 국면에서나 나타난 1400원대 고환율은 일상이 됐다. 수출 전망이 악화되면서 내년 이후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2.0%)을 밑돌 것이란 예측이 이어진다. 국내 주식시장은 백약이 무효한 상태다. 밸류업 정책을 써봐도, 금융투자소득세를 없애겠다 해도, 금리를 내려도 반등할 기미가 없다.
한·미 동맹에 올인하며 ‘가치 외교’를 강조하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마주하게 된 윤석열 정부는 당혹스러울 것이다. 외교 활동에서 늘 자유민주주의의 가치 공유를 앞세웠는데, 모든 걸 ‘딜’로 보는 트럼프 당선인에게 자유니 민주주의니 얘기해봤자 통할 리가 없으니 말이다. 이젠 계산기 꺼내놓고, 뭘 주고받을지 거래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하지만 지난 2년 반 윤석열 정부가 보여준 실력을 보면 걱정부터 앞선다. 한·일 정상 간 신뢰와 관계 개선을 그토록 자랑했지만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등재, 강제징용 제3자 배상 등에서 번번이 뒤통수를 맞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트럼프 당선인과의 골프 외교를 위해 8년 만에 골프채를 잡았다는 얘기가 대통령실에서 나오더니, 미 대선이 있기 몇달 전에도 골프를 쳤다는 사실을 국방부 장관이 실토하는 황당한 일도 있다. 앞으로 무슨 뒤통수를 더 맞고 헛발질을 하게 될까 싶다. 그간 다른 외교 옵션을 스스로 줄여버린 터라 운신의 폭도 크지 않다. 전 세계 주요국 가운데 유독 한국 증시가 휘청이는 건 저성장 공포에 더해, 정부가 과연 노골적인 미국우선주의에 잘 대처할 수 있겠냐는 불안감, 정치적 리더십과 거버넌스에 대한 불신이 반영된 것이라고 본다.
“내가 거래를 성사시키는 방식은 아주 간단하고 분명하다. 목표를 높게 잡은 뒤 목표 달성을 위해 전진에 전진을 거듭할 뿐이다. 때때로 목표에 미달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나는 원한 만큼의 목표를 달성한다. 대부분은 브로커로서의 본능에 좌우된다.”
8년 전 트럼프 당선인이 쓴 <거래의 기술>에 나오는 대목이다. 트럼프 당선인 머릿속에 한국은 “머니 머신(Money machine·현금인출기)”으로 각인돼 있다. ‘호구’가 되지 않기 위한 거래의 기술이 필요하다.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얼마나 많은 공장을 짓고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있는지, 트럼프 당선인이 윤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직접 언급했다는 조선업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주입해야 한다. 주한미군 주둔이 한국의 안보만이 아니라 중국·러시아를 견제하려는 미국의 필요에 의한 측면도 있음을 설파해야 한다. 실리를 챙기기 위한 외교력과 협상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