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명동에 서일필?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학부 교수

‘태산명동에 서일필’이라는 말이 있다. 요란했지만 결국 쥐 한 마리로 인한 소동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쥐도 없는 사례가 있다. 소위 뉴스타파의 윤석열 대선 후보 명예훼손 보도 사건이다.

뉴스타파는 대선 3일 전인 2022년 3월6일 [김만배 음성파일] “박영수-윤석열 통해 부산저축은행 사건 해결”이라는 보도를 내보냈다. 김만배의 주장에 따르면 부산저축은행 대출 브로커인 조우형이 박영수 변호사를 소개받아 당시 윤석열 검사가 주임검사인 부산저축은행 수사팀의 수사 대상에서 빠졌다는 의혹이 있음을 제기하는 보도였다. 검찰은 2023년 9월1일 김만배와 나눈 대화를 뉴스타파에 제공한 신학림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 수색하면서 본격적인 수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2024년 7월 김만배, 신학림, 뉴스타파 대표 김용진, 보도 기자 한상진을 윤석열 대선 후보 명예훼손 건으로 기소했다.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대통령실과 여당은 뉴스타파 보도를 민주당과 합작한 희대의 대선 공작이라며 공격했다. 뉴스타파 보도를 단순 인용 보도한 언론들은 방송통신심의위 중징계 대상이 됐다. 대선 후보인 공인을 향한 의혹 제기 보도가 검찰 수사 대상이 되고, 방심위 중징계 대상이 되면서 언론 비판 기능이 위축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될 정도였다.

그런데 재판이 진행되면서 검찰의 기소가 무리였음이 드러나고 있다. 재판부는 판사에게 예단을 갖게 만드는 불필요한 내용이 공소장에 많다고(공소장일본주의 위반) 지적했고, 검찰은 70여쪽이었던 공소장에서 20여쪽을 삭제해야만 했다. 삭제한 내용은 주로 이재명 공산당 프레임과 김만배-이재명 유착 관계를 주장하는 내용이었다. 검찰은 본공판에서 이재명 공산당 프레임을 다시 언급하다 지적받기도 했다. 검경 수사권 분리로 인해 명예훼손 사건은 애초 검찰의 수사 영역이 아니다. 그래서 검찰은 부패 사건에 해당하는 대장동 건을 연결시키려 애쓰는 것은 아닐까? 그 부분을 공소장에서 덜어냈다면 수사권이 없는 검찰의 수사, 기소 자체가 원천적으로 부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더욱 심각한 문제는 검찰은 허위 사실로 명예훼손했다고 기소했지만 보도 전체가 허위라고 주장할 뿐 어디가 혐의에 해당하는 허위인지 명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방어권을 위해 허위 부분을 특정해야 하며, 보도 전체가 허위라면 보도 각각의 내용이 어떻게 결합해 명예훼손이 되는지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만약 허위사실을 특정하지 못하면 공소 기각을 검토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10여개월을 대대적으로 수사하고 기소했음에도 허위사실을 특정하지 못했다면 검찰이 무능한 걸까, 아니면 무리한 것이었을까? 정치적 기소가 아닐까 의심받는 이유다.

부산저축은행의 대출 브로커인 조우형이 부산저축은행 수사팀을 만났지만 조사 대상에서 빠졌다면 언론이 의혹을 제기하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 의혹 제기만으로 수사·기소 대상이 된다면 언론 본연의 비판 감시 기능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언론 본연의 기능을 판단하는 이 재판은 당연히 언론이 관심을 갖고 보도해야 할 사안이다. 하지만 수사 개시 당시 거의 모든 언론이 다뤘던 이 사건은 막상 사건의 실체를 드러내는 재판과정과 관련해선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경향신문 등 일부 언론이 재판 내용을 전하고 있지만, 대다수 언론은 다루지 않고 있다.

위축효과일까? 그것보다는 많은 취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 태산명동은 보도하고, 취재력을 필요로 하는 서일필이라는 ‘진실’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언론의 상업성 때문일 가능성이 많다. 이런 언론의 보도 태도는 결국 진실을 전달해야 하는 언론 본연의 기능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고, 그 결과는 수용자의 불신이라는 칼날로 되돌아올 것이다.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학부 교수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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