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자격증 활용 공모전 최우수상’ 지적장애 3급 정인선씨
세상 설득할 증거 위해 도전장
9전10기 도전 끝, 자격증 따고
알바하며 틈틈이 사회복지 공부
경인장애인자립센터 상담사로
“특수학급 동생들의 희망 되길”
“나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엄마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안 그러면 돌아가셔도 눈을 못 감으실 것 같았어요.”
21세 때까지도 매일 “죽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는 정인선씨(28)에게 ‘9전10기’의 도전자로 탈바꿈한 계기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시간이 해결해줬어요. 자연스럽게 제 처지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서 주위 사람 생각도 하게 됐어요.”
정씨는 지난달 22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선정한 ‘국가자격증 활용 우수사례’ 공모전에서 최우수상(고용노동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지적장애 3급’인 그는 10차례 도전한 끝에 워드프로세서 자격증과 컴퓨터 활용 능력 2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에 힘입어 생애 처음으로 정규직 일자리도 얻었다. “자격증을 따기 전엔 열 번 지원하면 한 번 붙을까 말까였어요. 자격증이 생긴 후엔 세 번에 한 번 정도는 기회가 오는 것 같아요.”
정씨는 선천적인 언어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갓 중학생이 됐을 무렵엔 ‘지적장애’ 판정을 받았다. 일반 학교에 진학했지만 특수학급에 배정됐다. 사춘기 아이들은 자신보다 약한 아이에게 ‘강자’ 행세를 하며 자존감을 얻으려 했다. “비장애인 아이들한테 무시를 당했어요. ‘벙어리’ 소리를 듣기도 하고, 누군가가 제 책상 서랍에 쓰레기를 가득 넣어 놓기도 했어요.”
‘정글의 법칙’에 따라 그 역시 상처 입은 자존감을 회복시켜줄 희생양을 찾았다. “특수학급에 돌아오면 반 친구들 앞에서 잘난 체를 하곤 했어요. 그 학급엔 저보다 심한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많았거든요.”
‘내리 갈굼’의 경험은 ‘강자’(?)에 대한 위축감만 더 키웠다. “교회에 나가면 또래 중 저만 대학생이 아니었어요. 그들의 대화 내용은 저는 들어본 적도 없는 것들이었어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나 혼자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죽으나 지금 죽으나 매한가지였어요.”
도전자로 탈바꿈한 그는 ‘나도 할 수 있다’고 세상을 설득할 증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게 ‘자격증’이었다. 카페 주방보조, 건설현장 경리 등으로 일하며 틈틈이 공부했다. “필기시험에서 계속 떨어졌어요. 응시료로 쓴 돈만 10만원이 훨씬 넘었어요. 우리 형편엔 적은 돈이 아니에요. 하지만 엄마는 내색하지 않고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해주셨어요. 종이가 찢어질 때까지 기출 문제를 베끼면서 외웠어요.”
결국 나무는 넘어갔다. 틈틈이 사회복지 공부도 했다. 그리고 지난 9월 경인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의 ‘동료 상담’ 상담사로 채용됐다. 생애 첫 정규직이었다. 그를 채용한 센터의 강현옥 소장은 “정씨의 경우 자라면서 지속적인 노력과 자아인식을 통해 잠재된 능력이 계발된 것으로 보인다”며 “주변의 지지와 훈련을 통해 자신만의 특별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씨 같은 친구들 대부분은 그런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단순 알바나 계약직을 전전하게 돼요. 생활고에서 벗어날 수가 없고 통합사회의 일원으로 안정감 있게 살아가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정씨에게 포부를 물었다. “제 이야기가 같은 반(중고등학교 시절 특수학급) 동생들에게 ‘저 언니도 하는데 나도 할 수 있겠는데?’ 같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동생들 중엔 아직도 부모님의 품을 벗어나지 못하는 애들이 많거든요. 철없던 시절 제 자존감을 위해 그 애들을 이용했잖아요. 이젠 그 애들이 저를 이용해 자신감을 얻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