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에 이어 가상자산 과세 유예에도 동의하면서 내년에도 금융자산 과세 확충은 물건너가게 됐다. 민주당은 정부의 상속·증여세 완화 법안에 대해 ‘부자 감세’라며 부결시키겠다고 했지만, 이 정도로는 향후 예상되는 세수 결손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민주당은 정부·여당의 ‘가상자산 과세 2년 유예안’에 합의하면서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같은 내용을 담은 소득세법 개정안을 처리할 예정이었지만, 예산안 상정이 무산되면서 일단 처리는 미뤄졌다. 그러나 민주당이 방침을 정한 만큼 조만간 개정안이 통과돼 가상자산 과세는 2027년으로 또 미뤄질 예정이다.
이는 미국, 일본 등 주요국에서 이미 가상자산 소득에 과세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들 국가는 납세자 의무를 강화하고, 블록체인 분석 도구 개발 등을 통해 가상자산 은닉·소득 탈루를 막기 위한 인프라를 구축·보완 중이다.
정부는 해외 거래소를 통한 가상자산 거래 정보를 파악할 국제적 정보 교환이 2027년부터 이뤄진다는 점을 들어 과세 유예를 주장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을 중심으로 가상자산 관련 역외탈세를 막기 위한 국제 공조가 이미 이뤄지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 등은 “기술의 발전속도가 빠르고 예측이 어려운 가상자산 시장의 특성을 고려할 때, 과세를 시행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를 점진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며 ‘도입 후 보완’ 방식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가상자산 과세가 2022년과 2023년에 이어 올해까지 세 차례나 미뤄지면서 조세 정책의 신뢰성은 물론, 과세 기반을 확충할 기회를 잃어버리게 됐다.
금투세에 이어 가상자산 과세에 대해서도 말을 뒤집은 민주당은 상속·증여세 최고세율을 낮추고 과세표준 최저 구간을 상향하는 개정안에 대해선 ‘부자감세’라며 일단 반대하고 있다. 가업상속공제 확대, 최대주주 보유주식 할증평가 폐지에 대해서도 난색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세원 확충 없이 정부의 감세안을 막는 것만으로 대규모 세수 결손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에는 역부족일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내년 경기가 살아나 법인세 등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지만, 최근 경기가 빠르게 얼어붙으면서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 상장법인들의 연결 기준 3분기 누적 영업이익(53조4474억원)은 2분기에 비해 0.34% 감소했다. 예정처는 주요 법인의 최근 실적 증가세 둔화를 근거로 정부 예상보다 법인세가 4000억원 덜 걷힐 것으로 전망했다.
그동안 감세정책으로 일관한 정부의 정책기조로 2023년 국세수입이 전년보다 51조8000억원 줄어든 데 이어 올해에도 6조4000억원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조세 수입을 의미하는 조세부담률도 내년에 18.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022년 기준 25.2%)을 크게 밑돌고 있다.
세수감소는 재정건전성 악화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정부가 스스로 재정여력을 축소하는 악순환을 초래했다. 전문가들은 사회가 직면한 인구·불평등·기후위기 등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과세 기반부터 넓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행성 성격이 큰 가상자산에 과세하지 않는 것은 ‘소득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과세 원칙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과세 기반을 넓혀 이를 어떻게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하기보다 정부와 여당이 만들어 놓은 감세 경쟁에 뛰어들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