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열린 유엔 국제 플라스틱 협약 정부 간 협상회의에서 플라스틱 감축을 위한 합의문 도출이 무산됐다. 의장인 에콰도르 외교관 루이스 바야스 발디비에소는 1일 “일부 문안 합의가 이뤄진 것은 고무적이지만 소수의 쟁점이 완전한 합의를 이루는 것을 막고 있다”며 합의 실패를 선언했다. 이로써 2022년 유엔 환경총회 결정에 따라 2024년 말까지 플라스틱 오염 대응 국제협약을 만들려고 한 국제사회의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했다. 178개국이 3년 가까이 이어온 회의에서 인류와 지구 생태계를 위협하는 플라스틱 문제에 대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니 실망스럽다.
이견이 좁혀지지 않은 쟁점은 플라스틱 원료물질인 폴리머 생산 규제였다. 플라스틱 오염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생산 단계부터 감축해야 한다는 소비국들과 폐기물 관리를 잘하면 된다는 생산국들이 맞선 결과였다. 노르웨이 같은 유럽 국가들은 물론 르완다처럼 폐기물로 고통받는 100여개 국가가 생산 감축을 주장했다. 반대한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같은 산유국들이 많았지만, 플라스틱 1위 생산국이자 산유국인 미국의 지지 유보가 결정적이었다. 결국 화석연료 산업계의 뜻대로 된 것이다.
이번 마지막 ‘정부간협상위’ 개최국인 한국이 소극적 태도를 취한 것도 유감스럽다. 한국은 생산자 책임 재활용제도에 대해 적극 발언하기는 했지만, 플라스틱 생산 감축, 유해화학물질 퇴출, 협약 이행을 위한 별도 재정 마련 등 핵심 현안은 지지하지 않았다. 화석연료 산업계의 관점에서 접근한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경제안보점검회의에서 기후변화 대응에 부정적인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만큼 한국 석유화학 업계가 되살아날 것이라고 기대를 표한 게 단적이다.
전 세계에서 매년 생산된 플라스틱 4억5000만t 중 3억5000만t이 버려지는데 재활용률은 9%에 그친다. 25% 정도가 강과 바다에 투기되고 나머지도 대부분 매립·소각되며 독성 오염원, 온실가스가 된다. 현 추세대로라면 2060년엔 플라스틱 생산량은 지금의 3배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편리함에 도취돼 대량소비에 무감각해진 소비자도 각성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소비를 조장하는 대량생산 체제를 제어하는 것과 함께 가야 한다. 이번에 합의가 무산됐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이대로라면 공멸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