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에 이어 가상자산 과세에서도 기존 입장을 뒤집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1일 기자간담회에서 “추가적인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밝히며 정부·여당이 주장해온 가상자산 과세 2년 유예를 받아들였다. 윤석열 정부의 감세 정책을 비판하던 그 결기는 어디로 갔나. 민주당의 ‘내로남불’이 민망할 지경이다.
가상자산 과세는 2020년 국회를 통과해 2022년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이미 두 차례나 연기됐다. 그럼에도 정부는 준비 부족을 핑계대고, 여당은 정치적 지지층에 표심을 얻으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조세원칙도 내팽개치고 있으며 야당마저 대선을 염두에 두고 동조했다. 이처럼 정치적 이해타산에만 초점을 맞춘 ‘감세 포퓰리즘’ 경쟁은 국가의 위기 대응력을 떨어뜨릴 뿐이다. 이미 윤석열 정부의 부자 감세로 세수 기반은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지난해 국세수입이 전년보다 51조8000억원 급감한 데 이어 올해도 6조4000억원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수 펑크’에 따른 재정 적자로 경기 침체에 대응할 뾰족한 정책 대안마저 보이지 않는다. 세수 기반을 확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도 모자랄 상황에서 입법이 완료된 세제까지 유예하는 건 너무도 무책임하다.
‘능력 있는 수권정당’에 대한 믿음은 포퓰리즘이 아니라 정책 신뢰성에서 나온다. 하지만 민주당은 금투세 폐지를 받아들일 때부터 정책 일관성을 팽개쳤다. 이번에도 청년 투자가 많으니 가상자산 과세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여당의 주장에 솔깃했을 것이다. 이러니 민주당이 추진 중인 상법 개정 역시 ‘시늉에 그칠 것’이란 비판이 나오는 것 아닌가. 이미 마련된 법조차 시행하지 못하는데 정부·여당이 반대하는 상법 개정을 무슨 수로 관철시키겠다는 것인가.
한국의 가상자산 시장 규모는 세계 3위 수준이고, 투자자도 600만명이 넘는다. ‘트럼프 랠리’에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하자 국내 가상자산 거래 금액이 주식시장 전체 거래 대금을 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보다 시장 규모가 큰 미국·일본도 시행하는 가상자산 과세를 하지 않겠다는 것은 ‘묻지마 투자’에 등을 떠미는 것이나 다름없다. 공당의 정책이 시민들이 지향할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함의가 있다고 한다면, 민주당의 가상자산 과세 유예는 불로소득을 시대정신으로 제시한 것이나 다름없다. 국민의힘은 투기조장당, 민주당은 투기방조당이 되려고 하는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박찬대 원내대표가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