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투병 김진숙은 박문진과 함께
160㎞ 걸어 두 노동자를 껴안았다
이 추운 겨울의 고난과 투쟁에
함께하려는 걸음들이 분주하다
춥다. 며칠 전엔 폭설이 내렸다. 이런 날씨에 오늘로 330일째 고공농성 중인 사람들이 있다.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 옥상에 올라가 있는 박정혜(39)·소현숙(42) 두 여성 노동자다. LCD 편광 필름을 생산하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2003년 구미4국가산업단지에 입주한 일본의 ‘니토덴코’가 100% 지분을 가지고 있다. 알짜 기업으로 18년 동안 17조원을 벌었다. 그간 한국 정부로부터 토지 무상임대, 법인세와 취득세 감면 등 각종 혜택을 받아왔다.
그러던 2022년 10월4일, 공장에 큰불이 났다. 하지만 1300억원에 이르는 화재보험금을 받는다니 모두가 한숨을 놓았다. 그러나 회사는 생산물량을 한국 내 자회사인 평택 한국니토옵티칼로 모두 옮긴 후 200여명에 이르는 노동자들을 내쫓았다. 희망퇴직이라 했지만 강제해고와 다름없었다. 화재를 핑계로 한 구조조정, 먹튀였다. 현재 일곱 명의 노동자들이 남아 평택 한국니토옵티칼로 고용승계를 요구하고 있다.
소현숙씨는 16년을 이곳에서 성실히 일했다. “저는 되게 올바른 사람이거든요. 회사에서 하라는 것만 했어요. 절대 엇나간 짓을 한 적이 없어요”라는 박정혜씨는 13년을 일했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할머니 손에서 자란 그는 이 공장에 뼈를 묻겠다는 마음으로 일해왔다고 한다.
이들의 요구는 너무나 평범하고 간단하다. ‘평택 공장으로 고용승계.’ 과도한 요구도, 어려운 일도 아니다. 당연히 회사가 해야 할 일이다. 이전에도 회사는 필요할 때는 구미 공장 노동자들을 평택 공장으로 데려갔었다. 하지만 회사는 빠르게 공장을 철거하고 폐업하려고만 한다. 어쩔 수 없이 공장 옥상으로 올라가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그 시간이 오늘로 331일째다.
돌아온 것은 혹독한 더위와 추위, 고립감, 그리고 탄압뿐이다. 회사는 공장철거 방해 가처분을 신청하고 간접강제금 집행을 신청했다. 법원은 회사의 신청을 받아들여 남은 이들의 집에 강제경매 딱지를 붙였다. 전세보증금과 통장도 압류했다. 소현숙씨의 통장도 압류되어 조금 남아 있던 돈마저 강제 인출당했다. 그간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 중재신청도 해보았지만 사측과 제대로 된 협상 한번 없이 기각될 뿐이었다. 그간 외자기업인 니토덴코를 애지중지 보호육성하며 관리 책임을 가지고 있는 한국 정부는 나몰라라 하고 있다.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춥다. 날씨도, 이런 현실도.
지난 10월25일에는 제11회 김경숙상을 두 사람에게 주는 눈물겨운 시상식이 고공농성장 앞에서 열리기도 했다. 김경숙상은 1979년 YH무역 노동조합 투쟁 당시 공권력에 의한 진압 과정에서 점거농성 중이던 신민당사에서 추락해 숨진 여성 노동자 김경숙의 뜻을 기려 2014년 제정됐다. 또 얼마 전인 11월2일에는 ‘고공농성 300일, 옵티컬로 가는 연대버스’가 운행되기도 했다. 이 연대버스에는 전국 27개 지역에서 1000여명의 시민·노동자들이 함께했다.
그러고 지난 11월22일부터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박문진 전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이 부산 호포역에서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까지 160㎞를 걷는 도보행진에 나섰다. 두 사람 모두 부당해고에 맞서 복직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했던 기억들이 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2011년 부산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309일을 버텨야 했고, 박문진 전 위원장은 2019년 대구 영남대의료원 옥상에서 227일을 버텨야 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현재도 암 투병 중인 몸이다. 박문진 전 위원장은 필리핀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국내에 온 지 사흘 만에 다시 길로 나섰다. 하루 20㎞씩을 걸어 지난 일요일인 12월1일 구미 고공농성장에 도착해 후배 노동자들인 박정혜와 소현숙을 꼭 껴안았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하니 김진숙 지도위원과 박문진 전 위원장이 고공농성 중일 때 희망버스를 운행하는 데 함께했었다. 내가 청와대 앞에서 46일을 단식하고 있던 2020년 겨울에도 김진숙 지도위원은 부산에서 서울까지 걸어왔었다. 나도 길 나서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여기저기 묶인 일들이 놓아주지를 않는다. 이래저래 거리로 나가야 할 일이 많아지는 이 겨울이 춥다. 하지만 그 고난과 투쟁에 함께하려는 뜨거운 걸음들도 여전히 분주한 시대이니 “박정혜, 소현숙 힘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