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은 기후변화를 일상에서 하지만 매우 극적으로 체험했던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서울의 경우 7월21일부터 8월23일까지 34일 연속으로 열대야 현상이 나타나 근대적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최장 열대야 기록을 경신했다. 9월에는 추석인데 35도를 넘나드는 폭염을 겪었다. 11월에도 낮 기온 20도를 넘기는 날이 꽤 있었고 한국의 전통 아닌 전통인 ‘수능 추위’마저 사라졌다.
지난주 일부 지역에 첫눈이 내렸다. 상당히 강렬했다. 서울 지역에는 1907년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117년 만에 11월 기준으로 가장 많은 눈이 쌓인 것으로 기록되었다. 폭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겪었고 사고도 많았지만, 그 와중에 눈 덮인 풍경은 잠시 시름을 잊게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아직 나무에 남아 있는 푸른 잎과 단풍이 든 잎이 중첩되고 그 위에 소복하게 눈이 쌓인 장면이다.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 같은 그 장면이 신기하면서도 앞으로 우리가 계속하여 겪을 기후변화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기후위기는 단순히 지구의 기온이 올라가는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지구 온난화’라는 용어로 이 현상을 지칭했지만 지금은 ‘기후변화’라는 말이 통용되는 이유다. 기후변화는 평균 기온의 상승, 폭염과 혹한, 해수면 상승과 해류의 변동, 기존의 수준과 빈도를 뛰어넘어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허리케인 같은 자연현상의 발생, 농작물 생태의 변경 등을 복합적으로 야기한다. 며칠 전 한 장의 사진 안에서 푸른 잎과 빨간 단풍과 하얀 눈을 동시에 보았던 것처럼 기후변화의 영향을 매우 짧은 시간 사이에 다층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최근에 나온 미국의 기후 전문 저널리스트 제프 구델의 책 <폭염 살인>은 기후변화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생생히 보여줘 좋은 평가를 받았다. 기후변화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에어컨이 없는 곳에서 살고 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폭염은 훨씬 가혹하다. 이 사실은 여러 연구에서 지적되었고 이 책 역시 그 얘기를 빼놓지 않는다.
하지만 제프 구델은 그 너머 전망으로 나아간다. 앞으로 40년 후에는 지난 6000년 동안 인류 문명 탄생의 토대를 이루었던 상대적으로 온화한 기후조건의 밖으로 밀려날 인구가 10억명에서 30억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여태까지 폭염은 힘없는 사람들부터 도태시키는 약육강식 현장이었지만 이런 상황도 머지않아 변한다는 분석이다. 폭염이 더욱 강력해지면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던 사람까지 인류 대부분이 평등하게 폭염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 11월19일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총회 기간 중에 150개 나라 2000개 이상의 기후환경단체의 연대조직인 기후행동네트워크로부터 ‘오늘의 화석상’ 1위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한국은 공적금융을 신규 화석연료 사업에 지원하는 규모에서 세계 최상위권이고, 지난 6월 OECD 수출신용협약 정례회의에서 화석연료에 대한 공적금융 지원을 금지하는 안에 반대한 2개 국가 중의 하나였다.
미국의 경우 기후변화 대응에 미온적인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는 별개로 올해 추가되는 발전 용량의 약 58%가 태양광 발전이다. 중국은 태양광 및 풍력 발전 설비 건설에서 압도적 세계 1위이며 2030년을 목표로 했던 탄소 배출 정점을 그보다 몇년 빨리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정부는 이를 따라잡을 대책이 있는지 의문이다.
우리의 체험, 과학적 연구, 선도 국가의 동향 모두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가리킴에도 기후변화 부정론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신기하다. 나름의 근거를 내세운 논리, 경제적 혹은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들이미는 주장, 기후위기 관련 연구자나 단체에 대한 반발, 단순한 음모론까지 스펙트럼도 다양하다. 하지만 핵심은 기후위기 부정론은 지금까지의 과학적 발견에 반한다는 점이다. 기후위기를 부정하고 그 예측과 대응이 과장되었다고 하려면 과학적 분석과 데이터를 제시하고 검증을 통과하면 되는데, 그런 경우는 보지 못한 것 같다.
기후재앙의 임계치라고 하는 1.5도를 넘어설 때 파국이 오면 차라리 나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임계점을 넘어도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 그때 우리가 겪을 현상은 단순한 폭염이나 혹한이 아니라 푸른 잎과 빨간 단풍 위에 쌓인 하얀 눈처럼 이질적이고 다층적일 것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도 모자랄 판에, 힘을 보탤 것이 아니면 기후위기 부정론은 혼자만의 공상으로 남겨두고, 문제 해결을 위해 애쓰는 이들에게 초치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