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송전선로 건설 거센 반발···“눈물 타고 흐르는 전기, 이제 그만”

김창효 선임기자
이동백 고압송전탑 반대 정읍대책위원회 상임공동대표가  26일 전북 정읍시 덕천면사무소에서 ‘신정읍-신계룡 345㎸’ 송전선로 사업‘의 위험성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김창효 선임기자

이동백 고압송전탑 반대 정읍대책위원회 상임공동대표가 26일 전북 정읍시 덕천면사무소에서 ‘신정읍-신계룡 345㎸’ 송전선로 사업‘의 위험성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김창효 선임기자

“우리는 송전탑 싸움을 할 때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는 말을 가끔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고도 얼마든지 전기가 주민들의 복지와 경제에 이바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달 26일 ‘신정읍-신계룡 345㎸’ 송전선로 사업설명회가 열리는 전북 정읍시 덕천면사무소에서 만난 이동백 고압송전탑 반대 정읍대책위원회 상임공동대표의 말이다.

최근 지역마다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대규모 송전선로 건설과 관련해, 전북 지역 곳곳에서 사업설명회가 진행 중이다. 이날 찾은 정읍 덕천지역 설명회는 한전과 대책위가 각각 20분씩 설명하는 자리다. 설명회가 열리는 면사무소 앞 도로 옆에는 설명회를 알리는 펼침막과 ‘전기보다 사람이 우선이다. 송전탑 반대’라는 펼침막이 나란히 걸려 있다.

덕천지역 설명회는 지역 이장들만을 대상으로 진행됐는데, 이장단의 요구에 한전 측 설명회에 앞서 대책위가 먼저 설명회를 진행했다.

15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대책위는 송전선로의 입지 선정 문제 등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이동백 대책위 공동대표는 “입지선정위원회가 주민 대표성이 없이 구성됐고, 관련 정보 대부분 비공개하면서 해당 지역 주민들이 그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특히 주민들의 건강권, 재산권, 산림훼손 등의 여러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해외 사례를 들며 대책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문제 해결을 위한 4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첫째 전기가 생산되는 지역으로 공장을 이전하라, 둘째 송전선로를 바다 밑으로 해양 지중화하라, 셋째 고속도로나 철로 주변의 공공용지를 활용하여 송전선로를 매립하라, 넷째 전기요금을 거리별로 차등화하라고 요구했다.

‘신정읍-신계룡 345㎸’ 송전선로 사업설명회가 열리는  전북 정읍시 덕천면사무소 앞에 설명회 안내 플래카드와 송전탑 반대 플래카드가 나란히 걸려 있다. 김창효 선임기자

‘신정읍-신계룡 345㎸’ 송전선로 사업설명회가 열리는 전북 정읍시 덕천면사무소 앞에 설명회 안내 플래카드와 송전탑 반대 플래카드가 나란히 걸려 있다. 김창효 선임기자

대책위 측 설명회가 끝나자 한전 측은 곧바로 설명회를 진행하려했다. 하지만 이장단은 요식행위 같은 설명회는 반대한다며 진행을 거부했다.

전희배 이장(68)은 “주민도 모르는 가운데서 몇 명이 송전선로를 선정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고, 황당하다”면서 “수도권 공장을 위해 왜 시골 주민들이 험한 꼴을 당해야 하냐”고 비판했다.

결국 한전 측의 설명회는 미리 나눠준 1장짜리 자료로 대체하고 20분 만에 파행으로 끝났다.

오은종 한전 중부건설본부 송전부 차장은 “현재는 사업대상 지역만 나와 있을 뿐 실제 송전선로가 지나는 구간은 그 어떠한 것도 결정된 것이 없으며 추후 구성될 입지선정위원회를 통해 최적 경과지가 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파행으로 끝난 지역 설명회는 다시 추진하기로 했다.

산업통상자원부 ‘호남지역 주요 전력망 보강 계획’을 보면, 정부와 한전은 345kV 5개 루트 및 서해안에서 수도권으로 전력을 직접 수송하는 HVDC 방식 2개 루트 선로 건설을 추진 중이다.

전남 신안해상풍력단지 생산 전력(8.2GW)을 신장성변전소로, 전북 서남권해상풍력단지 생산 전력(2.4GW)을 신정읍변전소로 잇고 다시 신장성변전소에서 신정읍변전소를 이은 후 신계룡변전소까지 송전선로를 연결하는 사업이다.

전력이 공급되는 최종 송전지는 경기도 용인의 반도체클러스터로 예상되고, 176km 구간에 345kV 고압 송전선로와 250개의 송전탑을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이 구간에는 전북 9개 시·군이 포함돼 있다.

대규모 송전선로 건설사업은 균형 발전 차원에서도 지역에서 생산한 에너지를 해당 지역에서 소비하는 지산지소(地産地消) 방식으로 정책의 틀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기업들이 지방 재생에너지 단지 근처로 이전을 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달 들어 고창군에서도 주민설명회가 진행됐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30분도 안 돼 파행됐다. 무주·장수군의회와 정읍시의회는 송전선로 설치 반대 결의안을 채택했다. 지난 18일에는 안호영, 윤준병, 박희승 의원과 전북도의회, 전북환경운동연합 등이 기자회견을 통해 송전선로 계획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송전선로 신설은 전북뿐 아니라 전남 영광과 충남 금산, 강원에서도 주요 쟁점이 되고 있다. 하지만 한전은 올해 안에 지정을 마무리한다는 방침이어서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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