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법원이 약 70년 전 벨기에가 식민지 콩고에서 혼혈 아동을 어머니에게서 강제로 분리했던 정책을 반인도 범죄로 판단했다.
2일(현지시간) 가디언·AP통신에 따르면, 이날 벨기에 브뤼셀 항소법원은 정부가 과거 벨기에령 콩고에서 저지른 아동 강제 분리가 원고들에게 어머니와의 유대감·가정·정체성 상실 등의 고통을 일으켰다며 각각 5만유로(약 7400만원)의 손해 배상을 지급하도록 명령했다. 또한 소송 비용으로도 100만유로 이상을 지급하라고 밝혔다.
모니크 비투 빙기 등 여성 5인은 2020년 벨기에 정부를 상대로 소를 제기했다. 이들은 콩고에서 현지인 어머니와 벨기에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당시 벨기에 정부는 현재 콩고, 르완다, 부룬디에 해당하는 지역을 식민지배하며 이러한 ‘메티스’(혼혈) 아동 수천명을 어머니에게서 강제로 빼앗아 가톨릭 종교 시설, 고아원 등으로 보내는 정책을 폈다. 당시 흑인 여성과 백인 남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동 대부분은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했고 백인이나 흑인들과 어울리는 게 허용되지 않았다.
원고 5명도 1948~1953년 고향에서 수㎞ 떨어진 선교단체로 보내졌다. 법원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벨기에 정부는 이들의 가족에게 “아이를 놔주지 않으면 보복하겠다”고 위협했다. 당시 이들의 나이는 2~4세였다.
현재 원고 5인은 70~80대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빙기는 “울고, 울고 또 울었다. 가족과 함께했던 내 인생은 그날부로 끝났다”고 선교단체에 도착하던 날을 기억했다. 이처럼 정부에 납치된 아동은 시설에서 ‘죄악의 자식’ 취급을 받으며 개명, 학대, 심지어 성폭행을 당했고 1960년 콩고가 벨기에에서 독립한 이후로는 버려졌다.
1심에서 벨기에 정부는 아동 강제 분리 정책이 현대적 가치에 어긋나지만 당시에는 범죄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도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는 사실만으로는 법적으로 반인도 범죄로 판단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며 식민통치의 맥락에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원고들은 항소하며 5만유로의 손해배상액을 요구했다. 항소심은 1심 판결을 뒤집고 강제 분리가 “국제법에 위배되는 비인간적 행위이자 박해로, 반인도 범죄를 구성한다”고 판단했다.
선고 이후 원고의 변호인은 “승리이자 역사적인 판결이다. 벨기에에서, 아마 유럽에서도 처음으로 법원이 식민주의 벨기에에 반인도 범죄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고 밝혔다. 빙기는 “안도했다. 재판부가 이를 반인도 범죄로 인정한 것이다. (다른 원고들과 함께) 기뻐서 뛰어올랐다”고 가디언에 밝혔다.
벨기에는 1908년부터 1960년까지 콩고를 식민지배했다. 당시 국왕 레오폴드 2세는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원주민들의 손목을 자르는 등 잔혹한 통치를 펼쳐 ‘콩고의 학살자’로 알려졌다. 2020년 미국에서 백인 경찰의 가혹 행위로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계기로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번지면서 벨기에에서 레오폴드 2세 동상이 철거되기도 했다.
2019년 샤를 미셸 당시 벨기에 총리는 벨기에가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아동 수천명을 납치했던 것에 대해 사과했다. 또한 벨기에 국왕 필리프는 2020년 과거 식민통치에 사과가 아닌 ‘유감’을 표명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