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더 망가지기 전에

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
주한 외교단을 위한 신년인사회 참석한 김건희 여사. 경향신문 자료사진

주한 외교단을 위한 신년인사회 참석한 김건희 여사. 경향신문 자료사진

19-17-20-20-19. 윤석열 대통령의 11월 국정지지율이다(한국갤럽). 미국이 트럼프 2기로 방향을 틀고, 이재명 대표 선거법·위증교사 1심이 유무죄로 갈린 그 한 달, 국정지지율은 19%로 시작해 19%로 끝났다. “대한민국은 1주 단위로 숨쉰다.” 오래전 사석에서, 주한 외교관이 ‘여론조사 공화국’이라며 한 말이다. 아프고 정확하다. 이 겨울 대통령 지지율만 섰는가. 예산국회가 섰고, 의·정 대화가 섰고, 연금 협치가 섰다. 공직사회가 선 것도 꽤 됐다. 용산·국회·TF 안 가려 몸사리고, 정책도 ‘복지안동(伏地眼動)’하고, 위 지시를 녹음하며 남몰래 상황일지도 많이 쓴단다. 나라가 섰다. 대통령은 말이 날린다. ‘국정 발광체’의 힘과 믿음을 잃고, 동네북이 됐다. 둥 두둥 둥.

“거부한다.” 50여대학, 5300명 넘은 교수·연구자 시국선언에 등장하는 네 글자다. 글은 김건희, 채 해병, 검찰국가, 이태원참사, 역사왜곡, 입틀막, 혐오, 의료·기후·R&D 대란에 피가 끓는다. 경희대는 진실·윤리·평화, 공사의 경계가 무너진 땅을 ‘폐허’라 했다. 윤 대통령 모교 서울대는 ‘영혼 없는 기술지식인’을 양산했다고 사죄했다. “특검 받아라, 물러나라, 아님 탄핵하자.” 교수들의 시국선언은 문인·의료인·종교인·해병대예비역·교사·대학생들로, 어디 직장·단체 소속된 데 없는 수백의 ‘윤퇴청’(윤석열 퇴진을 위해 행동하는 청년들)으로 번졌다.

그 절규대로다. 나라의 토대가 거덜 났다. 생산·소비·투자가 10월 다 뒷걸음쳤고, 세수는 2년간 86조원 펑크가 나고, 내년·내후년은 1%대 성장하리란다. 환율·가계빚·주식시장 다 빨간불이다. 1년 새 ‘쉬는 청년’이 25% 늘고, 파산 법인 수는 27% 치솟았다. 그런데도, 정책은 탁상공론하고 낙관하다 몇 박자 늦는다. 각자도생은 약자부터 잡아먹는다. 동서고금 예외 없다. 민주주의 위기는 삶의 위기에서 온다.

민생뿐인가. 군함도에서 일본에 속더니, 사도광산은 더 쌩한 뒤통수를 맞았다. 애걸복걸 외교의 참사다. 결국 우리도 묵묵부답할 것을, 트럼프가 끝내려는 우크라 전쟁에 살상무기까지 설레발친 외교가 국격을 깎는다. 얼마나 박수칠 게 없으면, 바닥 보인 몰빵 외교가 대통령 지지 이유 1위인가. 인권위에 ‘인권’, 통일부에 ‘통일’, 노동부에 ‘노동’, 환경부에 ‘환경’이 없다. 응급수술·큰 수술 못한 한스러운 부음만 11월에 네 번 들었다. 이게 국정인가. 민족·민주·민생의 봄은 멀고, 안전하지도 않은 나라, 어찌 살라는 건가.

비할 데 없다. 올해의 인물은 김건희다. 노벨상 탈 한강이 걸리나, 이 땅의 울화 맺힌 김건희가 더 꽂힌다. 대통령까지 육성으로 공천 개입시키는 비선 실세를 본 것 아닌가. 그 ‘대통령 놀이’는 대통령 박근혜를 호가호위해 재벌 돈 뜯은 최순실보다 더 거침없다. 이제껏 명태균의 ‘여론조사 조작’까지도 못 간 창원지검 수사가 저리 더디고 무딜 뿐이다. 탄핵 발의에, 검찰과 감사원이 거칠게 맞서도 세상의 요동은 적다. 시민은 그들이 한 일을 알고 있다. 저 특검 지지율처럼, 매섭게 김건희만 보고 있다.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이 되었나?” 2016년 11월4일이다. 국정 기밀문서가 최순실 태블릿PC에서 쏟아진 지 열흘 만에, 지지율이 5%로 폭락한 그날, 박근혜가 한 말이다. 2024년 판이라면, “내가 이러려고 용산으로 옮겼나?”일까. 조롱받는 권력은 고립된다. 부평초(浮萍草)처럼 붕 떠버린다. 해도, 대통령은 ‘옜다! 사과’로 국민 부아 일으키고, 휴대폰만 바꿨다. 그게 소통인가. 원효대사가 경계한 갈대 구멍 크기로 하늘을 보고, 귀 닫고, 국민을 부끄럽게 하고 있다. 어리석은 혼군(昏君) 되려 집권한 이 있겠는가. 하나, 임기 반 갓 지나 세상은 진창에 빠졌다. 참사로 참사를, 거짓말로 거짓말을, 분노로 분노를, 실정으로 실정을 덮는 나라가 됐다.

닷새 전이다. 이른 해넘이 자리에서, 대통령 윤석열을 찍었다는 스마트팜 농부 친구가 술잔을 내밀었다. “나도 시국선언하고 싶다”며 이럴 줄 몰랐다고, 이 나라는 볼수록 검찰스럽고 김건희스럽고 부자 먼저란다. 망조 든 정권에 시민이 던지는 네 마디 오랏줄일 게다. ‘김건희 특검’ 없이, 이 나라가 한발이라도 내딛겠는가. 공직기강과 정책리더십이 서겠는가. 무너진 정권은 늘 자만하고 자승자박하다 자멸했다. 위정자는 국민 눈높이가 마지막 생명줄이다. 하라면 하고, 말라면 식물정부 되는 게 주권재민이다. 저 촛불, 진보·보수 논객의 날선 글, 시국선언 결기가 한 사람을 향한다. 2년 반 제대로 된 참회도, 결자해지도 없는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한다. 나라가 더 거덜 나고, 더 망가지기 전에.

[이기수 칼럼] 나라가 더 망가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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