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내 한 보건소에 마음투자지원사업 안내 책자가 놓여있다. 정효진 기자
“어머니께서 아이 이름으로 신청하시면 됩니다. 바우처 받으려면 진단서나 소견서가 필요한데 보건소 상주하는 의사에게 가면 빨리 받을 수 있어요.” -서울시 A상담센터
“아이 데리고 정신건강복지센터에 가는 게 제일 간편해요. 거기서 간단한 검사 하나 받으면 1~2주내로 바우처 승인이 날 거예요.” -경기도 B상담센터
정부가 우울·불안을 겪는 시민이 민간 상담센터에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지급하는 현금 바우처(상담비) 상당수가 아동 심리 상담에 쓰이는 것으로 확인됐다. 2~3세 영유아에게도 바우처가 지급했다. 정신건강복지 현장에서는 정부의 ‘실적 압박’이 상담 바우처 남발을 부른다고 지적한다.
3일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연령대별 마음투자 지원사업 참여자 현황’을 보면, 지난 9월 기준 이용자 1만1007명 중 영유아를 포함한 10대 미만이 633명으로 5.7%, 10대 이용자 수는 1597명으로 14.5%을 차지했다.
온라인 육아카페 등에서는 마음투자 지원사업 바우처로 자녀 심리검사와 상담을 받았다는 후기를 찾아볼 수 있다. 한 이용자는 “아이들 놀이치료에도 적용 가능한 바우처”라며 “서류 제출 이틀 만에 바우처 확정 통보를 받아 놀이 치료를 적당한 가격에 신청했다”고 했다.
심리 상담 현장에서도 마음투자 지원사업이 취지와 다르게 시행된다고 지적했다. 경기도에서 상담센터를 운영하는 한 심리상담사는 “지역사회에서 아동 수요가 굉장히 많다. 제 경험상 여기는 아동이 거의 절반”이라며 “사업 취지와 맞지 않는데, 전국민 대상이기 때문에 바우처를 받아 상담을 받고 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동들의 경우 8회 내 단기간에 라포(상호 신뢰 관계) 형성을 하며 치료 효과를 내기 어렵다”며 “아동 신청이 많아 실제로 자살 위기에 놓였거나 위급한 사람들이 상담 대기가 길어져 뒤로 밀릴 우려도 있다”고 했다.
애초 마음투자 지원사업은 자살 위험이 큰 만 15세 이상 우울 위험군을 대상으로 설계됐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예산 심의를 위해 국회에 제출한 2024년 예산운용계획에서는 ‘15세 이상 인구’를 바탕으로 대상자 규모를 산출해 추계 근거를 설명했다. 정부는 사업 시행 과정에서 15세 미만도 사업 대상자에 포함했다. 저조한 사업 참여율을 우려한 조치다.
공공 정신건강 복지 현장도 혼선을 빚는다. 바우처를 받으려면 시·군·구 정신건강복지센터 등 관계기관이나 병원에서 의견서나 진단서를 받아야 한다. 정신건강복지센터는 매뉴얼에 따라 사전 상담을 통해 바우처 발급 여부를 선별해야 한다. 정부가 ‘할당량’으로 실적 압박을 하면서 사실상 ‘프리패스’ 발급이 이뤄진다.
정부는 올해 마음투자 지원사업 이용자를 8만명, 내년 50만명으로 정했다. 2027년까지 100만명을 달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한 광역자치단체의 정신건강복지센터 관계자는 “일단 내담자가 오면 의뢰서를 안 끊어줄 수 없기 때문에 그냥 ‘의뢰합니다’라고 짧게 쓴다”면서 “일종의 요식 행위인데, 우리도 별로 상담 같지 않은 상담을 하고 나면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온다”고 말했다. 그는 “본래 업무인 상담이 아니라 행정 서비스를 하는 셈”이라며 “그야말로 졸속행정”이라고 비판했다.
의료계도 ‘상담 인원 100만명 달성’ 등 목표량을 정해놓고 현장에 실적을 독려하는 사업 방식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익명을 요구한 정신과 전문의는 “100만명 심리 상담 달성이 자살률 하락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정부가 정신의학에 대한 이해 없이 정책을 만들고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아이들도 정서적으로 문제를 겪기도 하고, 심리 상담을 받으면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우리나라의 정신건강 인프라가 해외에 비해 취약하기 때문에 전국민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