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증 정신질환자는 장기간 투약과 일상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지역 내 정신건강복지센터와 같이 공공 정신건강기관에서 치료와 돌봄에 개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효진 기자
“조현병 같은 중증 정신질환이 있는 환자가 간 질환과 암도 함께 가지고 있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응급 상황에서 치료받기가 정말 어려워요. 받아주는 병원을 찾을 때까지 정신건강전문요원들이 ‘뺑뺑이’를 해야 해요.”
올해 의·정갈등으로 심화된 응급실 ‘뺑뺑이’는 정신질환자들에게 더 큰 타격을 줬다. 응급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정신과 전문의가 24시간 근무하는 종합병원은 서울에서도 손에 꼽히는데, 전공의 인력이 병원에서 빠지면서 더 적어졌다. 경찰도, 구급대원도 난처해하는 상황에서 환자를 끝까지 책임지는 것은 ‘서울시 정신응급합동대응센터’ 전문요원들이다. 이승연 서울시 정신건강복지센터 부센터장은 “갈 만한 종합병원을 못 찾으면 요원들이 내과 질환 따로, 정신과 질환 따로 보는 식으로 병원 여러 곳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중증 정신질환은 공공 개입이 필요한 필수의료 영역이다. 전국 263개(2023년 기준)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지역사회 중증 정신질환자 관리와 재활을 돕는다. 밤사이 긴급하게 터지는 응급상황은 정신응급합동센터에서 대응하고, 낮 동안 일상 치료는 정신건강복지센터 영역이다.
정신질환자 투약·식사·의복 관리부터 병원 동행까지… 정신건강전문요원의 일상
서울 도봉구 정신건강복지센터 강민정 부센터장은 18년째 정신건강전문요원으로 근무했다. 센터 20여명의 직원 중 중증 정신질환자 사례관리를 맡는 전문요원은 강 부센터장을 포함해 16명이다. 강 부센터장은 “언론에는 중증 정신질환자분들의 위험한 면이 주로 나오지만, 연세 든 분들 중에는 병 때문에 자기주장을 못하는 경우가 많아 짠하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조현병, 조울증, 알코올중독 등 중증 정신질환은 만성질환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조기에 발굴해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본인 스스로 일상관리를 하기 힘들 때는 외부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해 도움을 줘야 한다. 전국의 센터 전문요원들은 각 지역 중증 정신질환자를 맡는다. 대개 1인당 25명인 ‘사례관리자’ 기준을 꽉 채운다.
강 부센터장은 “투약이 되지 않으면 현실검증력이 떨어져 일상생활이 안 된다고 판단하면 본인 동의를 거쳐 사례관리자로 등록한다”며 “직접 센터를 찾아오시는 분도 있지만, 지역 사회 민원을 통해 인지할 때는 여러 차례 설득해 등록을 권유드린다”고 말했다.
사례관리자 중 4~5명 가량이 집중관리 대상이다. 요원들은 주1회 이들을 직접 방문해 투약 여부, 환각·환청 등 증상 심화 정도를 살핀다. 강 센터장은 “식사를 하루에 몇 끼 먹는지, 어떤 것을 먹는지, 의복은 잘 빨아서 계절에 맞게 입는지 등까지 사례관리 노트에 꼼꼼하게 체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신건강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관련 정부 사업도 새롭게 생겨났다. 이는 고스란히 센터 업무로 이어진다. 지역 한 센터 요원 A씨는 “일반 상담, 비정기적인 외부 교육, 자문 상담, 마음안심버스나 자살유족사업 등 정부 사업 수행 때문에 일이 항상 많다”며 “사업은 ‘쪼개기’돼 내려오지만 예산도, 인력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센터를 찾는 환자들은 점점 늘어난다. 가족 돌봄을 못 받는 이들이 많다. 강 부센터장은 “가족 같은 돌봄·지지 기반 없이 노령화되는 중증질환자가 점점 많아진다”고 말했다. “조현병 환자인데 60대가 넘어 부모님도 돌아가셨고, 형제들은 굳이 개입하고 싶어하지 않는 분들은 돌봄과 치료적 개입을 모두 공공에서 한다”며 “돌봄이 필요한 중증질환자에 대해 공적인 체계를 더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 흔들리는데, 민간 지원 늘리면… 민간으로 빠져나가는 인력들
공공 부문 센터들은 공통적으로 ‘요원 인력난’을 호소했다. 이 부센터장은 “서울시는 전국 센터 중 전문요원 비율이 제일 높은 편인데도 점점 전문요원 비율이 낮아지고 있다”며 “공공기관 내 다른 직종으로 이직하는 사례도 늘어난다”고 말했다. 전문요원이 되려면 간호사, 임상심리사, 사회복지사 같은 자격증을 취득하고, 전문요원 수련기관에서 1년 이상 수련해야 한다.
공공 영역 요원들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다. 전준희 전 정신건강복지센터 협회장은 “17명의 전문요원이 중증 정신질환자도 관리하고, 자살 예방사업도 하고, 일반 상담도 하고, 재난 심리 지원도 하고, 응급출동도 하니까 당연히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센터 업무는 점점 늘고, 잘 훈련된 전문요원을 원하는 기관들은 많다 보니 공공 부문 요원들은 민간 으로 이동하는 사례도 많다. 마음투자 지원사업 시행 후 민간으로 옮기는 사례도 많아졌다고 한다. 한 센터에서는 “전문요원 1급 경력이 있는 사람이 개업해서 상담하면 한 시간에 8만원을 받으니 개업한다고 하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전 전 협회장은 “노인인구가 많은 지역에서는 공공 상담 체계가 없다시피 한데, 마음투자 지원사업을 통해 민간 상담 쪽에 지원하는 것을 보면 정책의 우선순위가 맞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